유혹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기에 앞서, 성령이 이끌려 광야로 들어가십니다. 그곳에서 사십일을 기도하며 지냈는데, 그 기간 중에 악마에게 유혹을 받습니다. 빵의 유혹, 권세와 영광에 대한 유혹, 그리고 인정받고 능력과 권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유혹입니다. 이 유혹은 예수님이 광야에서만 받았던 것이 아니라, 당신 삶 전체 안에서 이루어진 유혹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 안에서도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첫째로 빵의 유혹입니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유혹입니다. 빵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 조건이지만, 그것만으로 우리가 참으로 인간으로서 살아가거나 그것만으로 우리가 인간답게 사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으로 살아간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로, 악마는 예수님께 악마 자신을 경배하면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이 유혹 역시 예수님의 삶 전체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빵의 기적 이후에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떠받들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 유혹을 피해서 그들에게서 거리를 둡니다. 공간적으로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시고, 시간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는 하느님께 기도하심으로써 그 유혹을 피해 가십니다. 이 유혹은 오늘 우리에게도 결코 만만치 않은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조금만 타협하면, 잠시만 눈을 감으면 물질적 이익이 손에 들어올 것 같은 기회가 있습니다. 그런 기회가 바로 예수님이 겪으신 유혹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악마는 예수님께 성전 꼭대기에서 몸을 던지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천사들이 보호할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이 역시 예수님의 삶 가운데, 특별히 당신 수난 중에 되풀이되는 유혹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달리셨을 때(마태오 27, 39-), 지나가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곧이어 율법학자와 수석 사제들도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시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예수님은 성전 꼭대기에서 몸을 던지지 않았고 십자가 위에서도 내려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삶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인정받고자 하고, 또 그것들을 과시하고 싶어 합니다. 이웃과 관계를 맺을 때도 이웃과 더불어 어떤 일을 할 때도, 우리는 우리의 뜻대로 우리의 생각대로 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마음의 깊은 곳에 인정받고 권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깊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유혹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유혹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은, 인간의 불안하고도 온전하지 못한 조건 그리고 인간의 존재 깊이 숨겨진 욕망을 깨달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자신이 유혹받고 있음을 깊이 깨닫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삶의 전환을 이룰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약하고 불완전하며 욕망을 감추고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 삶의 한가운데서 다가오는 많은 유혹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의 전환을 이루도록 노력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유혹을 깨달을수록, 우리가 예수님과 더불어 광야에 서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순시기야말로 우리 삶의 전환을 이룰 기회이고, 우리 삶의 광야입니다.
오늘 내가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자주 넘어가는 유혹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그리고 그 유혹에 맞서 싸울 힘을 주시도록 기도하며, 이 미사를 정성껏 봉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