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434호 2017.0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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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염철호 신부 |
창세기에서 야곱은 어머니 레베카의 계략에 따라 형 에사우의 복을 가로챕니다. (창세 27, 1∼40 참조) 인간적 술수로 하느님의 축복을 가로챌 수 있는 것인가요?
염철호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jubo@catb.kr
성경을 읽을 때는 항상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경의 앞뒤 문맥을 잘 살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창세기 25장 23절에서 이미 레베카에게 두 아들 중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라고 알려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에사우가 아니라 야곱을 선택하셨다는 말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야곱과 에사우 이야기를 읽다보면 왜 에사우가 아니라 야곱이 선택받을 수밖에 없었는지가 잘 드러납니다. 에사우는 맏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축복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 때문에, 맏아들로서의 권리를 빵과 불 콩죽에 팔아넘기고,(창세 25, 34 참조) 히타이트 여인과 결혼해서 이사악과 레베카에게 근심거리가 됩니다.(창세 26, 35 참조) 그런데도 이사악은 에사우를 좋아해서 그를 축복하려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느님의 계획과 뜻을 이미 들었던 레베카는 계략을 짜서 에사우에게 주려던 축복이 야곱에게 돌아가도록 만듭니다. 이는 레베카와 야곱의 인간적 욕심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레베카의 노력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야곱의 후손이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는 에사우를 사랑하던 이사악보다 야곱을 사랑하던 레베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레베카를 다루는 부분이 이사악보다 더 길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 이야기는 둘째였던 야곱이 어떻게 장자권을 받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이지, 부정한 계략을 써서라도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좋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