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제8주일 강론)
좋은 나무, 좋은 열매
우리는 인물에 대한 비평을 할 때 자주 이런 말을 합니다. ‘참, 사람 볼 줄 모르제?’, 혹은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니네. 사람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왜 이런 말들을 할까요? 우리의 정보 수집과 판단 능력에는 항상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한계를 두고 오늘 예수님께서는 정확한 식별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람의 행실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즉, 언행이 상황에 따라 바뀌지 말아야 하고, 시종일관 항구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선행과 자선을 베풀 때 사심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익 때문에 보여주기식 선행과 일회성 자선을 베푸는 이들이 있습니다. 선거철 되면 자주 보는 장면입니다. 또 사기꾼들은 부정한 이익을 위해서 선심 쓰는 행동을 많이 합니다. 일단 좋은 사람으로 각인시켜 놓고 경계심을 풀게 한 다음 교묘하게 사기를 칩니다. 그 사람의 진면목은 오랜 기간 겪어보면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또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항상 부정적으로 말하고 남 탓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항상 긍정적으로 말하고 내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주 쓰는 언어 습관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외는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대개 마음에 있는 말들을 입 밖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가끔 망언과 궤변을 늘어놓긴 하지만 아무리 정적이라도 권력을 위해서라면 불쾌해도 그 앞에서는 속내를 감추고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잘 압니다. 겉으로는 웃으며 상대방을 예우하고 있지만 속은 게걸든 이리 마냥 허점만 보이면 마구 물어뜯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리고 판세가 유리하게 돌아가면 상대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 가차 없이 악의에 찬 말과 행동으로 공격합니다. 그러나 좌우 진영을 떠나 진정한 정치인인지 아니면 권력 지향적 기회주의자인지는 그들의 일관된 정치적 행보와 철학을 되짚어보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언행이 일치하고, 상대를 트집 잡고 험담하기보다 공동체의 선익을 위해서 협의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정말 믿을만한 사람이지요. 이 또한 겪어보면 압니다.
한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위선자에 대하여 가차 없이 비판하십니다.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상대의 티만 나무라는 태도는 위선이라는 것이지요. 비슷한 우리 속담으로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이중 잣대를 가지고 남을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한테는 관대하면서 타인에게는 엄격하게 굴지요.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절대 진리라고 확신하고 절대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아집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단어인데요. 확증편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만 올바르고 다른 것은 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의 유형은 사실관계조차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왜곡되고 조작된 허위 정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더 이상 그들과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맹신하는 사람에게는 그 어떠한 논리도 통하지 않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상대가 누구든지 막론하고 싸그리 적으로 돌린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 시대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서로의 이념과 이해관계를 떠나 예수님의 오늘 말씀은 국민 모두가 들어야 하는 진리의 말씀이 아닐까요? 제발 우리 전포성당 공동체는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휘둘리지 말고 신앙 안에서 일치하고 서로 사랑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