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8주일(다해, 2025년 3월 2일)강론
2005년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란 영화에서 이영애 배우가 사용했던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개 어떤 것을 충고한다든지 어떤 좋은 일을 권유할 때 전해 듣는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을 때 하는 말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충고하는 자가 더 문제가 많다는 말도 되겠고 그를 못마땅하게 여길 때도 이런 말을 하지요. 남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이나 잘 실천하라는 의미인 이 말은 말에는 언제나 행동이 따라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겠습니다.
남에게 충고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청하지 않는 충고는 하지 마라!’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루카 6,41-42)
저에게도 참으로 정곡을 찌르는 말씀입니다. 이제까지 저의 모습을 보면 남에게서 배우려 하기보다는 남을 가르치려 들고 듣기보다는 먼저 말하기 바빴던 저였기 때문입니다. 남을 자주 판단하면서도 정작 나의 모습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이 먹어가면서 생기는 특징이 있다고 하지요? 예를 들어보면 ‘과거 자기 자랑’과 ‘말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미국 시카고에서 교포사목을 할 때 한번은 한 형제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형제와 그 부인은 평일 미사를 자주 나오는 부부였습니다. 그런데 부인은 타지에서 공부하는 대학생인 딸 방문 때문에 평일 미사를 며칠을 못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미사 복음을 자기 부인이 꼭 들었어야 한다고 하며 그 형제는 아쉬워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그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자기 부인의 성격이 너무 고집스러워 그 말씀을 듣고 회개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한마디 했지요. 그 말씀은 자매님 보다 그렇게 생각하는 형제님에게 더 필요한 것 아니겠느냐? 라고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오늘 복음 말씀은 제게도 꼭 필요했고. ‘너나 잘하세요!’라는 양심의 소리가 들렸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의 허물은 더 크면서 남의 작은 허물을 가리키며 나무란다.’라는 뜻이겠지요.
사도 바오로는 주님께 큰 소명을 받은 사람이지만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 도중에도 늘 그리스도와 교우들을 박해하던 자신의 허물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하기 힘든 자신의 과거를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1티모 1,13)
복음서의 많은 곳에서 예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나무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마치 완전한 사람, 의인으로 군림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과 자신의 삶을 사람들에게 강요했고 자신들은 떠받들어지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자신의 허물을 깨닫고 겸손한 사람이 된다면 어떻게 남의 허물을 쉽게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누구는 이렇고 누구는 저렇다’라고 함부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충고도 진정 사랑을 담고 하는 충고라면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 말미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무는 그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모두 각자 ‘마음의 곳간’에 쌓아둔 것이 넘치면서, 그것이 말로써 드러난다고 하십니다. 살아가면서 말과 행동이 마음의 상태를 비춰주는 거울과 같음을 더 자주 보게 됩니다. 특별히 말에 있어서 그러합니다. 이 말은 ‘마음의 곳간’에 담고 있는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곳간에 선한 것들을 담고 있는가, 아니면 악한 것들로 담고 있는가에 따라 나의 말이 선한 것으로, 또는 악한 것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자신의 마음을 자주 추스르고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강론을 통해 내가 하는 말들이 다른 사람을 평화롭게 만드는지 아니면 분열을 만들고 불편함을 주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며 내 ‘마음의 곳간’에 쌓아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성찰해보면 좋겠습니다.
특히 이번 수요일부터 시작될 사순시기를 맞이하면서 우리 마음의 곳간에 먼지 가득 악한 것이 쌓여 있다면 내 자신의 허물을 벗어내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내 마음의 곳간을 채울 수 있도록 주님의 은총을 청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