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제7주일 강론)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사랑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고통에는 8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원증회고(怨憎會苦)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뜻은 원한을 품고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는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원망하고 미워하는 사람은 항상 내 주변에 있습니다. 이념과 지역 갈등이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는 요즘에는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정신적으로 더 분노하고 피곤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편 피를 나눈 형제지간에도 부모 봉양과 유산 문제로 원수가 되기도 하고, 같은 본당 신자들끼리도 크고 작은 상처 때문에 서로 인사조차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튼 원수가 되어버린 그들을 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이고 고통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정말 하나가 죽어야 끝이 나겠습니까?

 

그리스도교의 핵심 사상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절정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속성 가운데 사랑 외에도 정의도 있지만, 그것 역시도 사랑에 예속되어 있습니다. 만일 정의 안에 사랑이 없으면 정의를 가장한 또 하나의 보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원수 사랑은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거듭해서 초월적인 사랑을 실천하라고 이르십니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원수 사랑의 근거는 바로 이 말씀에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원수에게 복수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이라고 말하지만, 완덕을 추구하는 신앙인들은 원수까지 용서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지만, 용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에서 원수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것이 악에 대한 영원한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사형제도가 여전히 법적으로 존재하지만 실제 사형 집행은 2007년부터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역할이 컸는데요. 김 추기경은 입법 기관인 국회를 상대로 사형제를 대신할 다른 합당한 형벌을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줄기차게 건네왔습니다. 2007년 혜화동 가톨릭 대학 주교관에서 여러 국회위원들을 만난 추기경은 사형을 유지하자는 분들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벌한다는 법안을 만들자는 데는 반대할 것입니다. 사형제는 그런 법과 다름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추기경은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며 사형은 용서가 없는 것이다. 용서는 바로 사랑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배경에는 1990년대 중반 서울 여의도 광장 차량 질주 사건과 관련이 있는데요. 이 사건으로 최고수가 된 000씨의 피해자 가족 중에는 어린 손자를 잃은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천주교의 주선으로 할머니는 가해자인 사형수를 만난 뒤 그가 가난하고 냉대받은 사회 환경에서 자라나 결국 세상에 대한 분노를 그런 끔찍한 방법으로 표출했다는 것을 알고 사형수를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물론 끝까지 회개하지 않거나 용서를 빌지 않는 파렴치한도 있습니다. 그리고 복수심으로 사형을 원하는 피해자 가족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피해자 가족들이 사형이 집행된다고 한들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는 절대적 종신제와 함께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치유와 돌봄 시스템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악을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법에 의한 준엄한 심판은 분명히 따라야 하지요. 그러나 천주교 신자들은 죄인들의 생명까지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생명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며, 그 영원한 심판 또한 하느님께 달려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용서를 청하지 않는 죄인들에게는 회개를 촉구하고, 용서를 청하는 죄인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황금율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공자는 내가 싫어하고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요구하지 말라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고 하십니다. 정말 이 말씀대로만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면 전포 공동체가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하겠습니까?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토시 하나 뺄 수 없을 만큼 완벽하고 위대한 가르침입니다. 특별히 강론도 필요 없을 만큼 메시지가 명확합니다. 그러나 그 실천은 여전히 나를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잠시 나를 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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