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중미사 강론
2025.02.23 09:36

연중 제7주일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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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7주일(다해, 2025년 2월 23일)강론
 
프랑스 격언에 “피해는 모래에 써 놓고, 은혜는 대리석에 새겨 넣어라.”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이는 살아가면서 당하게 되는 억울한 일과 씻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상처들은 모래에 써놓아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 자연스레 흩어져 버려 어느새 자취를 감춰버리는 것처럼 빨리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받은 은혜와 감사함에 대해서는 결코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대리석에 새겨놓아, 세상 끝날까지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씩 우리네 삶을 돌아보면 “피해는 대리석에 새겨넣고, 은혜는 모래 위에 아주 살짝 써놓는 경우”를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열 가지 일들 중에서 아홉 가지를 내 능력이 아니라 이웃의 은혜 받아 이루어진다 해도, 마지막 열 번째 일에서 어쩌다 피해를 당하게 되면 그 하나가 억울하고 분통해서 먼젓번 아홉 가지의 은혜는 망각한 채 그 한 가지 상처에만 얽매여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도 많은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작은 것 하나 때문에 깊은 상처와 고통 중에 머물러 있다면 이러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고쳐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은총과 축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고, 우리의 이웃들도 직·간접으로 우리가 평생 다 갚지 못할 정도의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도 쉽게 그 은혜를 잊고 살아갑니다. 아주 사소한 일 하나 때문에 하느님을 원망하고 이웃을 멀리한 날들이 많지는 않았습니까? 그래서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여 미움과 갈등 그리고 원망 속에서 은총의 순간들을 놓쳐버리고 오늘날까지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볼 일입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 중 “원수를 사랑하여라.”는 말씀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늘 이상적인 가르침으로 다가옵니다. 실제로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은 우리 인간의 본성이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원수를 사랑하기 어려운 것은 그 가해자에 대한 증오심을 거두어들이기 어려운 이유도 있지만, 사랑의 기초인 용서가 잘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용서의 행위가 그 가해자의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결국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바로 나의 온 마음이 가해자에 대한 나쁜 감정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용서에 대한 개념을 너무 거창하게 대할 것이 아니라 그냥 작고 소박하게 그리고 단순한 마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용서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곧, 가해자의 죄를 사면해 준다거나 가해자와 화해하는 행위까지 가지 않더라도, 더 나아가 가해자를 사랑해야 만이 용서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한발만 물러설 수 있다면 원수를 용서하기가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일단 원수를 용서하는 첫걸음을 옮기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원수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포기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복수심의 포기는 그 가해자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의 평화를 위한 것임을 깨달아야만 수월해집니다. 따라서 내가 건강하게 다시 살아가고자 용서를 하는 것이지, 가해자를 더 좋게 하려는 용서가 아님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나를 위한 용서가 시작될 때, 궁극적으로는 우리는 훨씬 더 성숙된 신앙인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또한 복음의 가르침대로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 안에 자리하고 있는 악한 본성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한 우화가 생각납니다. 
개구리 한 마리가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마침 전갈이 나타나서 “너는 헤엄을 잘 치니까 나 좀 저 건너편까지 태워다 다오.” 그러자 개구리가 “당신은 무엇을 볼 때마다 꼬랑지로 찔러서 죽이던데, 당신을 믿을 수 없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전갈이 “강을 건너다가 내가 너를 찔러 죽이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데, 그런 바보 같은 짓을 누가 하겠냐?”고 제법 그럴싸하게 말합니다. 
개구리 생각에, “그렇지. 건너편에 도착하면 물속으로 재빨리 들어가 버리면 될 텐데...” 이렇게 안심하며 전갈을 업어주기로 하고, 강을 건너가는데 중간에 등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져 왔습니다. 전갈이 자기 몸에 침을 놓고 있는 거지요. 이제 다 죽게 생긴 것이지요. 그래서 개구리가 말합니다. “찌르면 너도 죽고 나도 죽고 하는걸 알면서 나를 찌르면 어떻게 하니?” 그러자 전갈은 “내가 찌르려고 그런 게 아니라 요게 내 본성이야.”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악한 본성 때문에 결국은 자신까지도 죽음으로 내모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오늘의 복음을 묵상하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미워하고, 배척하거나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이제는 좀 내려놓았으면 합니다. 때로는 그 사람들이 정말로 밉고 보기 싫어서 제발 사라져줬으면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사람들을 내가 더 가까이하며 사랑해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노력한다면 상대방 역시도 나를 그렇게 사랑해 줄 것이고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특별한 은총을 더해 주실 것이며, 우리 교회도 더욱 완전한 공동체로 나아갈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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