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하여라
세상 모든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 역시 이 연결망 안에서, 다시 말해서 관계 안에서 살아갑니다. 절대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특별히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인간이 관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임을 일깨워 줍니다. 인간은 이웃 인간과의 관계, 자연 만물과의 관계,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갑니다. 관계 안에서 살아간다는 말은, 나의 행동 하나도 개인적이거나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이웃과 자연 만물에 그리고 하느님께 깊은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뜻입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우리는 관계 안에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오늘날 기후변화나 코로나19와 같은 질병 역시 우리가 자연 만물을 착취하고 파괴한 결과로 우리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이웃에게 내뱉은 말 한마디 역시 좋은 것은 좋은 대로, 나쁜 것은 나쁜 대로 고스란히 다시 나에게 돌아옵니다. 우리가 관계 안에 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창세기가 우리에게 주는 신앙의 빛입니다.
불교 전통 안에서도 비슷한 통찰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인과 연으로 묶여져 있고, 지금 나에게 생기는 일들은 업보, 다시 말해서 과거 인연의 결과라는 말입니다. 인간은 과거 행동의 결과대로 오늘을 살아가고, 인간은 어제 이웃에게 한 것은 오늘 고스란히 되돌려 받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주는 깨달음 그리고 불교의 종교 전통이 주는 통찰을 바탕으로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이요, 그리스도교 교리의 본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구약의 율법을 하느님 사랑과 연결시키십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웃 사랑을 넘어서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인간의 관계망 안에서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옵니다. 내가 상대방을 원수로 대하면, 상대방 역시 나를 원수로 대할 것이고 이 관계는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원수조차도 사랑할 수 있다면, 나에게 잘못한 이를 내가 용서할 수 있다면, 나를 미워하고 욕하는 사람에게 잘해줄 수 있다면, 우리는 악과 죄의 사슬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내가 원수를 사랑한다고 원수의 태도가 즉각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나의 태도와 진심은 관계 안에서 돌고 돌아 나에게 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과거는 그냥 그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에 살아있고, 오늘 우리의 마음은 미래에 우리의 삶에 되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오늘 내가 참고 견디며 사랑하는 것이 당장 나에게 돌아오지 않더라도, 설령 나의 진심이 다시 나에게 돌아올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웃 사람들과 갖는 관계 그리고 자연 만물과 갖는 관계의 가장 밑바닥에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진심을 궁극적으로 하느님께서 받아 주실 것이고 하느님이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1독서에서 다윗이 말합니다. “주님은 누구에게나 그 의로움과 진실을 되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진심과 사랑의 행위는 이웃을 통해서 나에게 되돌아올 것이고, 궁극적으로 하느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느님께서 우리의 의로움과 진실을 갚아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우리가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기도하며, 이 미사를 정성껏 봉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