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7일 연중 제6주간 월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돌아가신 이갑수 가브리엘 주교님께서는 1991년 문을 열었던 부산가톨릭 신학대학에 매 학기 중간 즈음이면 방문하셨는데, 그때마다 주교님께서는 신학생들에게 1시간 정도의 영성강화를 해주셨다. 30년이 훌쩍 넘어가지만, 주교님의 말씀들 중에 지금도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는 단어가 하나 있다. « 보여달라 »는 말의 경상도 사투리, « 뷔도 »다.
세상 사람들은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느님을, 혹은 예수님을 보여 달라고, 그분을 « 뷔도 »한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구세주라고 믿는 성당에서도 예배당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 뷔도 »한다. 우리 시대만 이런 것이 아니라, 2000년도 더 된 예수님 시대에도 « 뷔도 »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 복음의 시작단어는 « 그때에 »인데, 예수님께서 4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베푸셨던 때다. 4복음서에는 군중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가 모두 나오지만, 예수님께서 군중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듯, 빵이 우수수 떨어지는 식의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아니다. 빵을 부풀리거나, 없던 빵을 마술 부리듯, 새로 생겨나게 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수 천명의 사람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것을 내놓고, « 나 먼저가 아니라, 너 먼저 » 빵을 먹으라는 마음, 콩 한쪽도 나눠 먹는 마음을 갖게끔 한 것이 기적이었다. 배가 뽕실하게 튀어나올 만큼 배불리 먹고도 빵이 남아 돈 것이 기적이 아니라, « 아빠, 엄마는 니들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는 그 마음을 군중들이 갖게끔 한 것이 기적이었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보았던 바리사이들은 « 에게, 이게 무슨 기적이냐? », 제대로 된 기적을 보여보라고 예수님을 다그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신다. 이미 돌이 빵이 되라는 기적을 거부하셨던 분이시고,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예수님을 없애기로 이미 작정한 상태다. 이런 저런 표징들을 요구하지만, 다시 트집을 잡을 게 뻔했으니 거부하신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을 « 뷔도 »하는 사람들에게 믿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믿는 하느님은 이런 하느님이라고, 나를 변화시키는 하느님이라고, 미움의 사람이 사랑의 사람으로 바뀐 ‘나’를 보라고 하는 수 밖에는 없다. 생명 없는 빵과 포도주가 생명 있는 몸과 피로 바꾸게 하고, 그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도 하느님의 사람으로 바꾸게 한다고, 하느님의 사람으로 바뀐 ‘나’와 ‘너’와 ‘우리’를 보여주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 뷔준다 »고 해서, 하느님을 곧바로 믿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이 닫혀 있으면, 어떤 기적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고, 마음이 닫혀 있는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이다.
« 뷔도 »하는 세상에 « 뷔줄 수 » 있는 나와 너와 우리로 살아가는 삶은 정녕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한 모습이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빛과 소금으로 살라 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