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6주일(다해, 2025년 2월 16일)강론
우리는 오늘의 루카복음에서 마태오 사가의 산상설교와 대비해서 일명 평지설교라고도 하는 4가지 행복선언과 4가지 불행선언을 듣습니다. 주님은 가난한 사람들, 굶주리는 사람들, 우는 사람들, 그리고 미움받고, 주님 때문에 쫓겨나고 모욕받고 중상을 당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선언하십니다. 반대로 부유한 사람들, 배부른 사람들, 웃는 사람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좋게 말하는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선포하십니다.
그런데 과연 지금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할까요? 20년 이상이나 뼈 빠지게 일하고 몸담았던 직장에서 해고되어 부인과 다투고 길거리에 방황하는 노숙자들, 병들어 몸져 누워있어도 돈이 없어 병원을 가지 못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환자들,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한 푼 벌어보겠다고 몸을 던져 노동을 하다 손가락 잘리고 봉급도 사기당해 모두 빼앗긴 채 불법체류자로 숨어 살아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이들에게 너희는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너희의 것이라고 말한들 과연 행복을 느낄까요?
그렇다면 이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재산, 건강, 덕망, 장수 그리고 평안히 임종하는 복을 두고 인간이라면 모두 바라는 행복의 다섯 가지 조건들로 언급해 왔습니다. 이것을 간추리면, 인간의 내면에는 곧 의식주에서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누리려는 생존 욕망, 자기를 드러내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명예 욕망, 권위로 남을 지배하고 싶어 하는 지배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주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은 우리가 추구하는 인간적인 행복과는 너무도 차이가 납니다. 행복선언에는 우리가 원하는 인간적 행복이 한 가지도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주님께서는 역설적으로 가난하고 굶주리며 울고 박해받는 사람은 행복하지만, 부유하고 배부르며 웃고 칭찬받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유물론자들은 주님의 이러한 말씀이 약자들에 대한 위로가 아니라, 오히려 약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내세에 대한 희망으로 미화시켜 현실을 회피하도록 만든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래서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까지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 가르침은 가난하고 굶주리며 슬픔과 박해로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현실적 처지를 스스로 위로하라는 말씀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히려 우리가 느끼는 가난을 통하여 인간의 한계와 세상의 차별이나 부조리를 깨닫고, 그로 말미암아 하느님이 아니시면 세상 어디에서도 평화를 얻지 못하며 만족도 얻을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기회를 얻기에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사실 인간은 부유하고 큰 명예를 누리면 교만해지기 쉽고 세속에서 만족을 찾으니 자연스레 하느님을 찾지않게 됩니다. 반면 가난하고 박해를 받으면 그 처지가 마치 빈들 즉, 광야에 외롭게 서있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자연스레 겸손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느님을 찾습니다. 그래서 많은 구도자들은 참된 행복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찾기 위해 광야로 나갔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굶주릴 때 배부름에 대한 고마움을 깨달으며 형제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에,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곤경에 처해 슬퍼하고 눈물을 흘려본 사람은, 이웃의 슬픔을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며, 또한 그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박해를 경험했을 때 우리는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당하는 수많은 약자들의 마음을 이해함으로써 그들과 함께 하느님께 의탁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단순히 잘 먹고, 많이 소유하고, 건강한 삶이라는 1차적인 행복관을 넘어서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간 참된 행복관을 말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불행을 체험한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세속의 법칙이 아닌 하느님의 법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행복하다 할 수 있습니다. 참 행복에 대한 주님의 말씀은 내세를 향한 현실 도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현실을 직시하고 참되이 살아가게 하는 진정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라도 행복에 대해서 조금씩은 알고 있습니다. 표현은 하지 않아도 ‘이것이 행복이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확신’을 갖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행복하다고 외치면’ 행복이 도망갈까 두려워합니다. ‘행복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근본이 하느님의 은총인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대 데레사 성녀께서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라는 표현처럼, 여기에 참된 행복의 본질이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날 우리 현실의 모습은 예수께서 선언하신 것처럼 가난한 자들이 좀 더 행복해져야 하는데 실상은 정반대로 가는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이 진정 하늘나라를 차지하기를 원한다면 지금 나와 함께 사는 가족들 그리고 주위에서 만나는 이웃들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좀 남다른 관심과 배려를 통해 나름대로의 작은 몫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늘나라는 성큼 나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