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간 레지오 마리애 훈화
주일 복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포함하며 첫 제자들을 부르시며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일꾼이 된 것입니다.
모든 일의 일꾼은 세 종류입니다. 첫째는 자신을 위하여 일하는 자, 둘째는 일을 위하여 일하는 자, 셋째는 하느님을 위하여 일하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하느님을 위하여 일꾼이 된 자는 “나는 심부름을 받고 태어난 생명이다”라는 사명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 심부름꾼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회사의 조그만 심부름꾼은 소사입니다. 몰래 보낸 심부름꾼은 밀사입니다. 하느님 심부름꾼은 천사입니다. 특별한 심부름꾼은 특사입니다. 급한 심부름꾼은 급사입니다. 임금의 심부름꾼은 칙사입니다. 공적 심부름꾼은 공사입니다. 심부름 받은 신하를 사신이라고 합니다. 심부름 받은 제자가 사도입니다.
그러하다면 세례를 통하여 주님의 제자가 된 우리는 과연 어떤 일꾼에 속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심부름꾼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키에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는 코펜하겐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 22세 되던 때에 일기를 이렇게 썼습니다. “온 천하가 다 무너지더라도 내가 이것만은 꽉 붙들고 놓을 수가 없다. 내가 이것을 위해 살고 이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나의 사명을 발견해야 한다.” 주님의 심부름꾼인 우리에게 ‘이것’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8)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당신의 사랑을 이 세상에 전해줄 심부름꾼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도 이사야 예언자처럼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라고 자신 있게 외치며 그분의 사랑을 전하는 심부름꾼이 되기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통해 우리 이웃들에게 주님의 사랑의 꽃을 피우는 아름답고 축복된 한 주간이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