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일(다해, 2025년 2월 9일)강론
바라던 공직이나 기업에 취직이 되어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첫 출근을 하던 아침을 기억하십니까? 그날 하루는 새로움과 기쁨과 감사가 넘쳐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은 그 첫 마음이 얼마만큼 남아 있는지요?
사제 서품 후 첫 미사 때, 새 사제들의 인사말 내용을 살펴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글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족한 저를 불러 주셔서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라는 감사 인사입니다. 진솔한 표현이기에 잔잔한 전율도 전해 오지만, 이런 인사를 들을 때마다, 저 마음만 잃지 않으면 충분하리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런데 10년, 20년, 30년이 지났을 때에는, 과연 어떨까요? 그 신선했던 첫 마음에서 색바랜 가족사진을 보는 자신을 지울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예언자들과 사도들은 자신들의 부족함을 정말로 깨달았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자신에게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맡기시려고 다가오신 주님을 만나자마자 자신이 더러운 입술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하며, 큰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이사야의 죄를 없애 주시고, 그를 당신 말씀을 전하는 깨끗한 입을 가진 이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자 이사야는 그 깨끗해진 입으로 외칩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주십시오”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도 자신이 어떻게 소명을 받게 되었는지에 관해 직접 이야기합니다. 예수께서는 당시 박해자였던 사울을 바오로 사도로 세우십니다. 하지만 바오로는 예수님의 직제자가 아니었던 데다가 박해자 출신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자랑할 수도 없었고, 또 언제나 신앙적 선배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가 전하는 말씀은 자신이 “전해 받은” 복음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라고 겸손되이 고백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부르십니다.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어부로 일하던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눈 앞에 펼쳐진 놀라운 일에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실제 우리도 갑자기 신적 능력을 체험하거나 하느님의 현현(顯現)을 경험하게 되면 먼저 보이는 반응이 두려움과 떨림이라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의 부르심에 관한 이야기에는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하느님께서 누군가를 선택하시면, 그는 자신이 사명을 수행하기에는 부족한 인물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그에게 용기를 북돋우어 주고, 그는 자신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수행해나갑니다. 이런 이들은 반드시 마지막에 가서 자신이 행한 일이 스스로의 능력에 따른 일이 아니라 모두 하느님께서 하신 일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래서 선배 원로신부님들의 회고록을 보면 항상 “돌아보니 모든 것이 은총이었네”라고 고백합니다.
이들은 모두, 나같이 능력 있는 사람이 일을 도와 드리고 있으니 하느님께서 나에게 고마워하셔야 한다거나/ 내가 도와준 사람들이 나에게 보답해야 한다고는 감히 생각하지도,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대로, 자신들이 무엇인가 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임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잘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당신의 제자로 삼으시거나 가까이하지 않으시고 칠삭둥이라고 자처하는 겸손한 이들을 찾으시는 모양입니다.
오늘날 복음 선포자에게 가장 절실한 덕목 가운데 하나는, 바오로 사도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면서 의탁하는 겸손한 자세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자신을 PR하며 자랑하기를 선호하는 오늘날, 스스로를 너무 과하게 포장하여 자신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자만심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하느님의 활동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 잘난 맛에 하는 오만한 이들의 삶에서 겸손한 하느님 종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해야 하고, 무엇을 하든 그분의 뜻을 찾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이룬 뒤, 그 모든 것을 하신 분은 하느님이심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오늘의 독서와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도 주님께서 ‘있으라’하신 자리에서 주어진 소명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되돌아봅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