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간 레지오 마리애 훈화
설을 지내고 첫 번째로 맞이한 주일이 바로 주님 봉헌 축일이며 동시에 축성 생활의 날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은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앞에 봉헌된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봉헌’은 ‘맡긴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믿음이 없다는 맡김도 봉헌도 없는 것입니다.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선생님이 “가난한 어린이에게 인형을 나누어 줄테니 집에서 인형을 가져오라.”하고 말했습니다. 한 어린이가 집에 와서 자기 인형들을 눕혀놓고 유치원에 가져갈 인형을 골랐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낡은 인형은 줄 수가 없어, 제일 좋은 인형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그 인형의 옷을 갈아입히고 벽난로 옆에서 따뜻하게 재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섭섭해하며 눈물 글썽이는 아이에게 아버지가 “너 왜 우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이 아이는 제일 좋은 인형을 남에게 주려고 하니까 섭섭해서 운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괜찮아. 하느님은 그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실 거야.”라고 했습니다. 이 아이는 자기의 인형을 갖다가 가난한 어린이에게 기쁜 마음으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크리스마스에 아버지는 시중에서 제일 좋은 인형을 사다가 그 어린 이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 유치원 어린이는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자기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인형을 이웃에게 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고 있는 우리들은 얼마나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주님께 우리 자신을 맡긴다고 하면서 뒤로 남겨둔 자신의 다른 부분은 없습니까? 사실 봉헌 시간에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네”라고 성가를 부를 때면, 정작 바치는 것도 없으면서 큰 목청으로 ‘아낌없이 바치네’라고 외치는 것이 가슴이 찔리기도 합니다. 주님 봉헌 축일과 함께 시작한 새로운 한 해, 진정 주님께 우리의 모든 것은 내어 맡길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달라고 청해야 할 것입니다. 벙어리 영이 들린 자식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외쳤듯이 우리도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마르 9,24)라고 주님께 외치며 주님의 자녀로서 모든 것을, 주님의 손에 맡겨드리며 주님의 축복을 받는 아름다운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