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봉헌

이스라엘의 율법에 따라서, 예수님은 태어난 지 여드렛날에 할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40일이 지난 후에 성전에 봉헌됩니다. 성탄대축일 40일 후에 교회는 아기 예수님이 성전에 봉헌되신 것을 기념하여 주님 봉헌 축일을 지냅니다. 그리고 이 축일에 교회는 전통대로 성전의 제대에서, 그리고 각 가정에서 기도할 때 사용될 초를 봉헌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요셉과 마리아는 당시 가난한 사람들이 바치던 제물, 비둘기 한 쌍을 봉헌 제물로 바칩니다. 그리고 이 제물은 성전에서 태워져 하느님께 봉헌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봉헌의 핵심은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제사는 제물을 태워버립니다. 짐승이건 곡식이건 제사를 위한 제물이 되면 모두 태워 없애 버립니다. 오늘날의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면, 유용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은 방식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분명합니다.  인간의 손에 닿지 않고, 더 이상 인간이 사용할 수 없도록, 그래서 오로지 하느님의 것이 될 수 있도록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봉헌의 핵심은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고 귀한 것이라도 한낱 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이 태워버림의 핵심은 온전히 포기하고 하느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나의 시간, 나의 노력, 내 영역의 모든 것을 온전히 포기하고 하느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봉헌의 정신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마리아의 삶은 완전한 봉헌의 삶이었습니다.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완전히 자기를 포기하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 역시 완전한 봉헌의 삶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자기 포기이고 봉헌입니다. 더 나가서 십자가 위에서 자기 자신을 완전히 태워버리고 하느님 아버지께 자신을 봉헌했습니다.

이러한 봉헌, 자기 포기의 가장 가까운 예를 오늘 우리가 함께 축복하고 교회에 봉헌하는 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초는 자신을 태우고, 자신을 버림으로써 다른 이들을 비추어 줍니다. 이것이 자기 포기이고 봉헌입니다. 우리 모두가 오늘 우리가 거행하는 축일의 정신대로 봉헌의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내 시간, 내 노력, 내 마음, 내 자존심, 이 모두를 하느님께 그리고 우리 공동체에 봉헌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을 봉헌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것을 봉헌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각자의 작은 봉헌들이 모여서 우리 공동체와 우리 교회의 더 큰 봉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주님 봉헌 축일은 주님께 자신을 봉헌한 수도자들을 기억하는 축성생활의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수도자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우리 자신 역시 포기하고 희생하여 봉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하며, 이 미사를 정성껏 봉헌합시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50 오늘의 강론 부활 제4주일 강론 당감주임 2025.05.10 10
149 오늘의 강론 부활 제3주일 강론 당감주임 2025.05.03 17
148 미사시간 및 전례 미사시간 안내 file 이믿음수산나 2025.04.29 19
147 오늘의 강론 프란치스코 교황 추모미사 강론 당감주임 2025.04.26 24
146 오늘의 강론 주님 부활대축일 낮미사 강론 당감주임 2025.04.19 33
145 오늘의 강론 주님 부활대축일 파스카 성야 강론 당감주임 2025.04.19 18
144 오늘의 강론 주님 수난 성금요일 강론 당감주임 2025.04.18 15
143 오늘의 강론 주님 만찬 성 목요일 강론 당감주임 2025.04.17 14
142 오늘의 강론 주님수난 성지주일 강론 당감주임 2025.04.12 24
141 오늘의 강론 사순 제5주일 강론 당감주임 2025.04.05 15
140 오늘의 강론 사순 제4주일 강론 당감주임 2025.03.30 13
139 오늘의 강론 사순 제3주일 강론 당감주임 2025.03.22 13
138 오늘의 강론 사순 제2주일 당감주임 2025.03.17 17
137 오늘의 강론 사순 제1주일 당감주임 2025.03.08 25
136 오늘의 강론 연중 제8주일 강론 당감주임 2025.03.01 24
135 오늘의 강론 연중 제7주일 강론 당감주임 2025.02.22 24
134 오늘의 강론 연중 제6주일 강론 당감주임 2025.02.15 28
133 오늘의 강론 연중 제5주일 강론 당감주임 2025.02.08 26
» 오늘의 강론 주님 봉헌 축일 강론 당감주임 2025.02.01 19
131 오늘의 강론 연중 제3주일 강론 당감주임 2025.01.25 1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 8 Nex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