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제3주일 강론)

 

말씀의 종교

 

천주교는 경전의 종교가 아니라 말씀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꾸란이나 불경처럼 신주단지 모시듯 하지 않습니다. 이슬람에서는 꾸란을 훼손하면 신성모독으로 중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줄을 긋고 메모를 한다고 해서 신성모독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경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전에 나오는 말씀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개신교 신자들은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에 줄을 많이 쳐서 너덜너덜해지면 새 생경을 사서 다시 읽고 공부합니다. 열심한 개신교 신자들은 집에 성경 3~4권은 보통입니다. 이 점은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천주교는 전례 개혁을 하게 되는데, 그중에 하나가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성찬의 전례가 우선시 되고 말씀의 전례는 홀대를 받았지요. 그러나 지금은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하느님의 현존이 드러나는 동등한 자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말씀을 충분히 읽고 묵상한 상태에서 사제의 강론을 듣고 성찬의 전례에 임하면 영성체의 감동이 두 배가 됩니다.

 

오늘 제1독서는 느헤미야기 말씀입니다. 기원전 538년 바빌론 유배가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유다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제 에즈라와 총독 느헤미야가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기 시작합니다. 성전은 하느님의 현존이 계시는 곳입니다. 유배 이후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며 다시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성전 재건이고 율법 준수였습니다. 그래서 성벽 공사가 마무리되자 사제이자 율법학자인 에즈라는 회중 앞에서 율법서, 즉 모세오경을 봉독합니다. 그리고 성전 봉사자들인 레위인들이 율법서를 번역하고 설명을 덧붙이자 그 뜻을 알아듣고 백성들은 통곡하기 시작합니다. 나라 잃고 유배 갔지만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기쁨과 그간 하느님의 섭리에 흘리는 회한과 감사의 눈물이었지요. 그래서 유다인들은 이 시기부터 하느님 말씀에 진심이었고, 자신의 목숨과 같이 여겼던 것입니다. 이 점은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하느님 말씀을 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하느님 말씀이 곧 구원이고 생명이라고 믿고 있습니까?

 

오늘 복음은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이사야 두루마리를 펴고 읽으시는 대목입니다. 이사야서 61장을 인용하시는데, 곧 희년 선포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원과 사명을 천명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셨는데, 이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 도래가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적은 메시아로서 행하는 구약의 성취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성경은 인류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입니다. 3주간 계속해서 365일 성경일기표를 나눠드렸는데, 여러분들은 매일 성경을 읽고 계십니까? 누차 말씀드리지만 매일미사를 나오시는 분들은 3년 동안 신구약의 주요 부분을 다 읽게 됩니다.

 

끝으로 가톨릭교회의 오랜 전통인 거룩한 독서’(聖讀) 렉시오 디비나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4단계로 진행되는데, 말씀 읽기 말씀 묵상 말씀 기도 말씀 실천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말씀 읽기는 성경 본문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는 것입니다. 이성과 지식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영과 마음으로 읽는 것입니다. 성령께 도우심을 청하고 성경 본문이 어떻게 나의 영과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지 귀를 열고, 오감을 통해서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는 것입니다. 둘째 말씀 묵상입니다. 묵상은 이성적 반추로 성경 본문의 메시지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성경공부가 묵상에는 도움이 되지만, 성경 자체를 지식으로 받아들이면 그 깊이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묵상은 단순히 이성적 사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구원의 메시지를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묵상은 반드시 관상의 단계로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순간 기도하다 보면 이성적 사고가 멈춘 그 자리에 하느님께서 머물러 계심을 느끼게 됩니다. 하느님 현존 안에 머물다 보면 더 이상의 사고는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내 생각 속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 내 영 안에서 머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말씀 기도입니다. 하느님 말씀에 대한 응답은 결국 기도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대한 흠숭, 찬미, 탄원, 감사를 기도로 표현합니다. 이는 성령 안에서 충만해집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 없이 참된 기도를 바칠 수 없습니다. 성령을 배제한 기도는 자칫 기복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끝으로 말씀 실천입니다. 말씀에는 씨가 있고, 씨는 땅에 떨어져 뿌리를 내고 자라나 열매를 맺습니다. 말씀만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위선자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행실로 드러납니다. 간략하게 렉시오 디비나에 대한 개요를 말씀드렸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많은 부분 소공동체 말씀 나누기와 일맥상통합니다. 평일 미사 때 이미 말씀드렸지요. 복음의 본문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바로 라고 여기라고, 그리고 본문에서 주님의 마음을 읽으라고, 그리고 끝으로 주님께서 지금 나에게 무엇을 바라시는지 묵상해보라고. 이 세 가지만 알고 있으면 말씀 나누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경전의 종교가 아니라 말씀의 종교입니다. 말씀이 곧 생명이고 구원입니다. 오늘부터 성경을 늘 가까이 두고 단 몇 줄이라도 매일 읽어나가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이 나를 영적으로 살찌우고, 나를 악으로부터 보호하며, 나를 삶의 지혜로 이끌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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