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중미사 강론
2025.01.26 08:13

연중 제3주일 강론

조회 수 32 추천 수 0 댓글 0
연중 제3주일(다해, 2025년 1월 26일) 강론
 
34년 전 제가 사제서품을 받고 첫 사목지였던 만덕성당에서 사목하던 어느 날 신영세자가 “신부님! 저는 신부님이 공산주의자인줄 알았습니다. 예비신자 교리 시간 내내 나누며 살라는 말씀을 하도 많이 하시길래요!”하고 지나가는 말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웃으며 넘겼지만, 천주교회의 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도 끊임없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나눔의 삶을 강조합니다. 왜 그렇게 나눔의 삶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오늘 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복음선포의 첫 출사표를 던지신 곳이 갈릴래아입니다. 이스라엘에는 갈릴래아보다 더 중요한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왜 예수께서는 정치 경제 문화 종교의 중심지요, 이스라엘에서 가장 상징적인 곳인 예루살렘에서 첫 복음을 선포하지 않으시고 변방인 갈릴래아를 택하셨을까요? 
갈릴래아 지역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도 대단히 천대받던 곳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스라엘 북왕국에 속해 이방신을 모시고 살았던 갈릴래아 사람들을 ‘이민족들의 갈릴래아’라고 멸시하며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로 단정 짓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가난하고, 구속되고, 눈멀고, 억눌린 이들에게 기쁜 소식과 해방과 자유를 주시기 위해 예수께서는 이들을 상징하는 갈릴래아를 우선적으로 택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라는 오늘 복음 구절은 저의 사제서품 때 선택한 성구(聖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34년이란 긴 세월이 지난 현재를 생각해보면 그 성구에 충실하지 못했던 저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자비의 얼굴’이란 칙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과 행동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로하고, 현대 사회의 새로운 노예살이에 얽매인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자신 안에 갇혀 있어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들이 다시 볼 수 있도록 하고, 존엄성을 빼앗긴 모든 이가 다시 그 존엄을 찾도록 요청하셨습니다...‘자비를 베푸는 사람이면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로마 12,8)라는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이 우리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라는 글입니다.
이 글은 점점 중산층화되는 한국교회, 본당 내에서 빈부격차로 소외되는 신자들이 많아지고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가 되지 않도록 호소하는 글로 들립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자비와 용서의 하느님이시기에 우리는 오늘 또다시 그분의 삶을 닮아갈 수 있도록 청해야 합니다. 특별히 여러분 가족 안에 힘들어하시는 분이 있다면 오셔서 감싸주시길 청해야 합니다. 내 영혼과 육체 안에 눈멀고 묶인 부분이 있다면 해방의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믿음은 영적 에너지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내가 믿는 신앙이 마치 삶의 짐처럼 느껴진다면, 주님의 도우심으로 짐이 아니라 삶의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길 청해야 합니다. 
원래 사람은 살다가 그냥 죽어버리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런 듯이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갑니다. 영적 세계를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영적 세계로 눈 돌리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의 가르침은 예수님을 통해 빨리 우리 영혼의 눈을 뜨라는 권고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능력에 모든 것을 맡기며 자유롭고 기쁨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성경 여러 곳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자주하셨습니다. 물고기가 어항에 갇혀 있기보다 큰 바다로 나가면 훨씬 자유로워지듯이 우리 인간도 한계가 있는 세상일에 머물지 않고 대자비하신 하느님의 품에 안길 수 있다면 얼마나 자유로워지겠습니까? 그래서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란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말씀처럼 우리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시련과 고통들 그리고 걱정거리들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에게 중요한 화두(話頭)가 있다면, 그것은 ‘은혜로우신 아버지 하느님’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위해 은혜로움을 실천하지 않고 은혜로우신 하느님을 잊어버리면 잊어버린 그만큼, 우리는 은혜로우신 하느님과 무관합니다. 
특히 오늘 ‘해외원조 주일’을 지내면서 우리나라가 정말 가난한 시절 많은 원조를 외국으로부터 받았던 기억을 생각하면 이제는 오늘날 지구상 곳곳에서 굶주림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우리가 도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에게도 내리셔서 세상이 주는 시련이나 고통 그리고 걱정거리에서 벗어나, 은혜로우신 하느님과 함께 살면서 참으로 자유로운 자녀로 거듭나시길 바랍니다. 즐거운 설 명절 맞이하여 주님의 더 큰 축복이 여러분에게 내리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2 연중 제6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2.16 46
61 연중 제5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2.09 58
60 주님 봉헌축일 주일 미사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2.02 29
59 설 합동위령미사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1.29 108
» 연중 제3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1.26 32
57 연중 제2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1.19 60
56 주님 세례축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1.12 45
55 주님 공현 대축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1.05 36
54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1.01 76
53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4.12.29 31
52 대림 제4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4.12.22 62
51 대림 제3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4.12.14 61
50 대림 제2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4.12.08 38
49 대림 제1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4.12.01 22
4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4.11.27 29
47 연중 제32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4.11.10 75
46 연중 제31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4.11.04 52
45 연중 제30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4.10.27 39
44 민족들의 복음화 주일미사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4.10.20 25
43 연중 제28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4.10.13 35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Nex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