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제2주일 강론)

 

카나 혼인 잔치

 

지난주 금요일 서울 약현성당에 혼배 주례를 하러 갔다 왔습니다. 미사 중에 혼인 서약의 첫 번째인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강론했습니다.

 

준주성범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너는 남의 과실과 연약함이 어떠한 것이든지 그것을 끈기 있게 참는 법을 배워라. 너도 다른 사람이 견뎌야 할 많은 결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너도 너 자신을 마음대로 못하여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는데 어찌 다른 사람이 네 뜻대로 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남들이 완전한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면서도 우리 자신의 허물은 고치지 않는다.” 부부가 서로 맞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서로가 다른 환경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성격과 입맛, 생활습관, 가치관이 같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매일 붙어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서로의 단점과 작은 허물에도 시비가 잘 붙습니다. 그러나 다투더라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화해하십시오. 나의 감정과 혀를 잘 다스리고 인내와 관용 속에서 서로의 문제를 원만하게 잘 해결하는 것이 결혼생활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릅니다. 좋아하는 것은 기호이지만, 사랑은 운명이고 받아들임입니다. 예를 들면 집안 배경, 학벌, 재산, 외모, 재능 등은 기호입니다. 그것은 서로 비교 가능하지만 사랑은 그것을 초월합니다. 사랑은 비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고,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생활은 서로의 필요에 따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특별한 인연이라고 믿는 것이고, 서로가 어떠한 처지에 있던지 그것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기혼자 여러분들은 혼인 서약을 잘 지키고 계십니까? 오늘 복음은 카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혼인을 신적인 영역으로 끌어 올리십니다. 성경에서 혼인 잔치는 하느님 나라의 은유이자 상징입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신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신부인 당신의 백성을 절대 버리지 않고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복음에 등장하는 카나의 혼인 잔치는 그저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풍요로움을 드러내는 표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표징은 기적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가리키고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 첫 번째 표징인 물로써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은 예수님의 복음 선포가 밋밋한 일상을 기쁨의 축제로 만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은 일상을 상징하고, 포도주는 축제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일상이 맹물처럼 맛이 없었지만, 예수님을 알고 난부터는 일상이 포도주처럼 맛이 있고 먹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삶이 축제가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의미로 물은 유다인들의 정결례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은 율법 중심의 유다교를 상징합니다. 반면 포도주는 복음 중심의 그리스도교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물이 포도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이제 하느님 나라가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서 성취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에서 흥을 돋구는 것이 무엇입니까? 음식도 음식이지만 포도주가 빠지면 잔치가 아니지요. 그런데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맛난 포도주는 예수님의 기적으로 말미암아 넘치고 넘치게 손님들에게 제공됩니다. 처음에는 포도주가 곧 떨어져 잔치가 김샐뻔했지만 지혜로운 성모님의 중재로 최상급의 포도주가 주어집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느님 나라는 축복이 넘치고 부족함이 없는 충만의 상태라는 말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인간적인 혼인 잔치에서 신적인 혼인 잔치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혼인 잔치가 하느님 나라를 은유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신랑이 되시고, 교회는 신부가 됩니다. 요한복음과 같은 계통인 요한 묵시록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자. 어린양의 혼인날이 되어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다. 그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 특권을 받았다.” 묵시록은 신부가 입은 고운 아마포 옷을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라고 말합니다.(묵시 19,7-8) 물론 어린양은 십자가에서 희생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지요.

 

오늘 카나의 기적 이야기는 복음의 기쁨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르는 우리들은 교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2독서인 코린토 전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성령의 은사가 공동선을 위해서 드러났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직분과 은사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같은 성령 안에서 공동선을 지향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본당에는 다양한 신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비록 몸은 병들고 노쇠하여 활동은 못 하지만 매일 묵주기도를 공동체를 위해서 바치십니다. 또 어떤 분은 가진 것은 없지만 재능기부나 몸으로 노력 봉사하십니다. 또 어떤 분은 바쁜 일상 중에서도 자신이 가진 음성과 노래로 전례 봉사하십니다. 모두 다 같은 성령 안에서 받은 은사입니다. 공동선을 지향하는 우리는 하느님 백성이며, 우리가 함께 나누는 사랑과 희생은 하느님 나라의 풍요로움을 드러내는 거룩한 표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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