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복음 2,1-11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에 종교적으로 별 의미가 없는 듯한 두 가지 사건을 들려줍니다.
혼인 잔치에 취흥을 돋우고(오늘 복음) 성전에서 화를 내신(13-22) 이 두가지 일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벗어나는 이 예기치 않는 시작으로
(공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세례을 받으시는 이야기를 들려준 것과 비슷하게)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일하시는 분이심을 알려줍니다.
잔치에 600리터(됫병으로 300개)나 되는 포도주를 주시는 것을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표시로 삼다니요!
굶주리는 이가 수도 없이 많은데 술 말고 다른 것을 해주실 수는 없으셨을까요?
성서에서 혼인잔치란 하느님과 당신 백성과의 계약을 나타내는 특별한 상징이었습니다.
혼인이란 서로 배려하고, 보완하며, 서로에게 속하고, 서로에게 내맡기고 동반하며 일치하고 삶을 아름답게 하는 사랑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이렇듯 성서에서 하느님은 인류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는 '신랑'으로 묘사됩니다.
잔치에 포도주가 모자란다는 것은 자칫 잔치를 망쳐버릴 수 있는 사건입니다.
오늘 의 복음에서 나오는 혼인잔치가 하느님과 인류의 계약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때
포도주가 모자란다는 것은 '사랑'의 부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혼인의 계약을 맺는 남녀에게 사랑이 없으면 혼인은 굴레가 됩니다.
하느님과 인류와의 관계에 사랑이, 신뢰가 부족하면 역시 우리들의 자유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이 사랑을 풍성히 부어주시고 우리의 자유를 되찾아주러 오셨음을 복음사가는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족을 제일 먼저 알아차리시는 분이 계십니다. 성모님이십니다.
그리고 전폭적인 신뢰로 아드님께 알립니다.
"포도주가 없구나!"(3절) .... 그리고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5절)
우리의 삶 속에서 오늘도 성모님은 이렇게 전달자의 역할을 다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1절)
우리의 자리에 함께하시는 어머니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면 훨씬 더 든든하지 않을런지요?!?
더 나아가서 우리 역시 성모님처럼 주어진 자리에서 이웃의 필요에 민감한 자 되었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성모님처럼 형제들 곁에 그렇게 머무는 자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