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9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미사 강론

by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posted Jan 14, 202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5년 1월 9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신학교에 입학하고 제일 먼저그리고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바로 사랑하라는 말이다. 형제를 사랑하라이웃을 사랑하라하느님을 사랑하라동기사랑은 나라사랑’ 등등. 나는 이런 말들을 들으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사랑사랑하는데도대체 사랑이 뭐꼬?’ 그래서 1학년 2학기 때 거의 한 학기 동안 도서관에 있는 책들 중에 사랑이라는 제목이 들어가 있는 책이라는 책은 무작정 미친 듯이 읽어 내려갔다. 내 기억으로 대략 한 120여권을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그렇게 책들을 읽고 난 후 가 얻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있다면‘사랑에 대한 기술’ 정도사랑이라는 것이 정말로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하나도 얻지 못했다. 2학년이 되면서, 차츰 사회에 대한 눈도 뜨고, 세상에는 어두움의 세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알게 되고,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 받은 채로,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사람다운 대접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로, 이 세상을 살다 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나라 이 땅의 역사, 부끄럽기 짝이 없고, 불쌍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처절하게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이 땅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기 보다는 예수로 말미암아 시작된 교회의 학문을 더 많이 배우게 되고, 하늘의 소리를 듣기보다는 수많은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의 말들과 그들의 논리들을 배우게 되면서, 신학교 1학년 때에 내 스스로에게 던졌던 « 사랑이 도대체 무엇인가? » 라는 이 물음은 점차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리고 때가 되어서 군대에 갔었고, 때가 되어서 부제품을 받았다. 

     
25년전, 2000년 1월 27부제서품을 받고 1월 30일부터 2월 2일까지 당시 부산교구 내에 계시는 사제서품 30년차 이상 되신 신부님들을 방문하면서 인사를 드렸다.
나는 
그 기간동안 부산 시내에 있는 동기 부제들 본당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첫째날은 괴정성당에서, 둘째날은 반여성당에서 지냈다둘째날 저녁반여성당에서  
정말로 입만 살아있는 똥자루에 지나지 않았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2000년 21반여 성당에서 저녁미사가 있어서 지금은 미국 아이타스카 한인 성당 주임신부인 윤 기성 신부와 함께 부제복사를 섰다영성체 때가 되어 성체를 분배했다그러던 중에 어떤 분이 성체를 받아 모시려고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내 앞으로 내민 손은 엄지손가락과 약지손가락이 없었다그리고 남은 세 손가락마저 문드러진 손이었다머릴 들고 그 사람이 누군지 봤다그러나 미사보에 얼굴이 가려져 자세히는 볼 수 없었다바로 그 순간 내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말로만 듣던 나병환자를 바로  눈 앞에서 보았기 때문이었다순간 두려움이 를 덮쳤다얼른 정신을 차리고 성체를 그분 손에 떨어뜨리다시피 해서 성체를 주었다그분 다음차례부터는 아무런 정신도 없이 그냥 성체를 나누어주었다그리고 미사는 끝났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분은 나병환자는 아니었다. 산업재해로 손가락을 잃은 분이었다.

     
미사가 끝나고 는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성당에 앉아 있었다. 예수 따라 살아 보겠노라고 마음도 먹어보고,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이 사랑이라고 주절주절 배우기도 많이 배웠지만, 정작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그렇게 멍하니 있으면서 깨달았다. 사랑은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로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것,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하는 것, 주님의 은혜를 선포하는 것은 예수의 지상에서의 삶에서 사랑’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내일, 모레, 먼 미래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삶 속에서, 예수의 오늘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저 따신 밥 한술 더 떠먹여 주고, 그저 따신 옷 한 벌 더 입혀 주고, 그저 편안한 잠자리를 마련해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다. 사람으로 나서 온전한 사람으로 살수 있도록 삶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사랑이다. 말로만 사랑하자 말하지 말고, 내 손 한번 더 내밀고, 내 발걸음 한번 더 떼어 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 삶이 바로 사랑이다.
 
 여러분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