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1988호 2009.04.12 
글쓴이 사회사목국 

- 이주노동자들의 어려운 현실을 소개합니다.

오랜 기간 이어지는 경기 불황으로 우리들의 삶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팍팍한 삶을 이어주던 임금이 줄어들고, 이마저도 모자라 해고당하는 노동자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임금이 유일한 생계 수단인 노동자에게 해고는 곧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절박한 문제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이주노동자들은 해고 1순위이기 때문에 최근 직장을 잃은 이주노동자를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가톨릭노동문제상담소와 가톨릭이주노동자센터를 운영하는 노동사목(지도 : 이창신 신부) 사무실에는 해고와 관련한 노동문제 상담과 직장을 구하지 못해 불법체류자가 될 처지에 놓인 이들의 하소연이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몇 달 전부터 사무실 한편에는 쌀이 담긴 커다란 자루가 놓여 있습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먹을거리가 떨어진 동료들을 위해 그들 스스로 쌀을 모아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턱없이 부족하긴 해도 정부차원의 지원금을 받는 국내인들과 달리, 그들은 최소한의 혜택도 받을 수 없는 이방인이기에 ‘나눔’이라는 자구책을 마련한 것입니다. 안타까워 뭔가 도울 일이 없겠느냐는 제안에, 필리핀 공동체 대표인 미나 씨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만, 이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쌀은 떨어졌습니다. 날이 갈수록 해고당한 이는 늘어나고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아끼며 견뎌보자는 생각으로 작은 방을 구해 대여섯 명씩 함께 잠을 자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누어 먹을 쌀도, 아껴 먹을 반찬도 없습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일도 없는데 고생하지 말고 그냥 자기 나라로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들은 마음대로 귀국할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한국에 오기 위해 많은 빚을 내고 온 사람들이 귀국해서 일을 하여 빚을 갚기란 더욱 어렵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얼굴 가득 미안한 표정을 한 채 미나 씨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당장 먹을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서른 명이 넘습니다.” 도움을 받는 것을 너무나 미안하게 생각하는 미나 씨가 이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망설였을지, 또 망설임이 있었지만 결국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이 가슴 아팠습니다. 빠듯한 사목 살림에서 돈을 마련해 부족하나마 며칠을 견딜 수 있는 쌀과 라면 등을 사서 나누었습니다. 먹을거리를 받으며 수줍게 웃던 그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이 어려운 시기가 얼마나 더 계속될 지 걱정이 앞섭니다. 하지만 모두가 절망하고 있는 중에도 조그만 나눔이 이뤄진다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인들 가운데도 어려운 이가 많은데 굳이 타국에서 온 이방인을 도와야 하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오 25, 40) 의 구절처럼 우리가 행하는 모든 나눔은 곧 주님을 향한 것입니다. 따뜻한 나눔으로 절망 앞에 놓인 이들의 희망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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