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2일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 여러분은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으시오.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시오 »라고 말씀하신다. 이 기다림은 때를 모르는 기다림이다. 혼인잔치가 언제 끝이 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오늘 복음을 두고, 종말 때에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라고 가르쳐 왔다. 세상의 마지막 날이 언제가 될지, 오늘 밤이 될지, 내일 아침이 될지, 오늘 복음의 표현처럼, « 밤중에 올지, 새벽에 올지 » 모르니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 왔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은 다소 사람들을 권태에 빠지게 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다림은 사람을 힘 빠지게 할 뿐만 아니라, 그 기다림이 길어진다고 느껴지면서부터는 기다림의 이유조차도 잊어 버리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왜 기다려야 하는지, 그 까닭을 까맣게 잊어 버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 신은 없다. 신은 죽었다 »라는 말도 나오게 된다.
그러나 그분은 이미 오셨다. 2천년 전, 베틀레헴의 마굿간에서 태어난 아기로만 오신 것이 아니다. 지상에서의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사신 것만이 그분이 오셨다는 증거가 아니다.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그분은 언제나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있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둘이나 셋이 모여 기도하는 곳이면 언제나 당신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상 종말의 심판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마태오 복음 25장 참조), 그분께서는 이 세상의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당신을 동일시하셨다. 그러므로,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에, 언제나 그분도 존재하신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은 « 이미 오신 주님 »과 «장차 오실 주님, 그래서 다행히 아직은 오지 않으신 주님»이라는 두 시간의 간격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에게 « 장차 오실 주님 »을 잘 기다리면서, 잘 맞이하기 위해서는 « 이미 오신 주님 »께 충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더 이상 우리 인간의 눈으로 뵈올 수 없는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늘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 이 세상에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그분도 그들과 함께 그들 안에서 존재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맞이하기 위해 깨어 있는다는 것은, 그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린다는 것은 그분께서 동일시하신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따뜻이 맞이하는 것, 그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주님 대하듯이 대하는 것과 똑 같은 것이다.
그들을 외면하고, 세상 종말에나 오실 주님을 기다리기 위해 깨어 있자고 말하는 것은 세상 종말에도 주님은 오시지 말라는 말과 똑같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시간, 그들이 우리 곁으로 올 때에 그들을 따뜻이 맞이해주는 시간, 바로 그 시간이 « 장차 오실 주님 »을 잘 기다리고, 잘 맞이하기 위한 기다림과 준비의 시간이다. 오늘 복음은 ‘언제 사랑하려 하는가 ?’ 라는 물음에 대해 ‘바로 지금’이라고 응답하라고 나를 채근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