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를 감사드리며 새해에 마리아와 함께
오늘은 2024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 공동체는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송년감사미사를 봉헌합니다.
오늘 송년감사미사를 봉헌하면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로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 잠시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는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이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말합니다. 저자의 이러한 질문과 문제의식은 그리스도교 가르침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제는 어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제는 언제나 오늘 안에 살아있고, 오늘은 여전히 내일 안에 살아 있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언제나 자기 민족의 과거 역사를 되돌아보며 하느님의 뜻을 찾아냈습니다. 또한 자기 민족의 오늘을 바라보며, 미래를 예언했습니다. 어제는 오늘 안에 살아 있고, 오늘은 내일 안에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과 살아있는 이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를 위해 도움을 준다는 것이 “모든 성인의 통공”이 말하는 바입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과거와 역사의 결정체이며 동시에 다른 모든 이들의 도움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찰 없는 삶은 어리석은 삶이며, 감사하지 않는 삶은 교만의 삶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밤 우리는 송년감사 미사를 봉헌하며, 오늘까지 우리의 삶을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동시에 우리의 삶이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성취와 결과를 얻어야만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함께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내가 여기 있다는 것 자체가 하느님의 은총이고 모든 이들의 도움입니다.
오늘 우리 공동체는 송년감사 미사를 봉헌하면서 동시에 새해의 첫날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를 봉헌합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는 우리가 성모송을 바칠 때마다 외우는 구절입니다. 이 표현이 뜻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마리아가 천주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표현은 마리아에 대한 교리를 훨씬 넘어섭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교리와 전례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참으로 인간이시며 참으로 하느님이시라는 신앙고백입에 있습니다. 마리아는 참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입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어머니됨은 하느님 말씀을 마음 속에 간직하는 데서 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는 목자들이 전한 말에 놀라워하며, 그 일들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곰곰히 되새깁니다. 비단 오늘 복음만이 아니라 루카 복음 전체를 통해, 마리아는 항상 하느님 말씀을 마음 속에 간직합니다. 아기를 가질 것이라고 천사를 통해 전해진 하느님의 말씀, 잃었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되찾았을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 이 모든 말씀들을 마리아는 마음 속에 간직했다고 말합니다. 마리아는 참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자기 태중에 품고 사는 어머니입니다. 하느님 말씀의 어머니입니다. 마리아의 이런 모습은 그리스도교의 기도와 영성의 원형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마음에 넣고 되새겨 묵상하며, 그 묵상한 말씀에 순명하여 실천하는 것이 기도요 영성입니다.
오늘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에, 우리 모두가 하느님 말씀을 품고 사는 어머니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의 용기와 평화, 하느님의 능력과 축복이 되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맞이하는 새로운 한 해가 하느님 말씀으로 새로워지고, 온 세상의 평화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과 기도를 모아,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