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9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기도 안에는 기쁨과 즐거움, 행복과 감사, 찬미, 영광 이런 것만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염원, 희망, 절망, 아픔, 슬픔, 울분, 억울함도 다 들어 갈 수 있다. 능수능란한 언어 사용과 현란한 수식어로 가득 찬 아름다운 문장만이 기도가 아니며, 기도문에 나오는 기도만이 기도도 아니다.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말로 가득찬 기도만이 기도도 아니다. 때로는 불평도, 불만도, 울분에 가득 찬 소리도 기도가 될 수 있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들 속에 살아 가는 사람들, 많은 것을 잃거나, 소중한 것을 잃어 버린 사람들, 외롭고 버려졌다고 느끼는 사람들, « 주님, 왜 ? »라고 울부짖는 사람들, 그들의 그 « 왜 »라는 단발마의 비명에 가까운 말이 기도가 될 수 있다. 그 소리들이 정녕 하느님을 향하고 있다면 말이다. 예수께서도 당신의 아버지, 우리들의 아버지께 그렇게 기도하시지 않았는가 ? « 주님, 주님, 왜 저를 버리셨습니까 ? »라고 말이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친히 기도하는 법을 알려주신다. 바로 주님의 기도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기도하는 법을 알려주시면서, 형식화되고, 외우기 쉬운 기도문을 알려주신 것이 아니다. 이러한 내용으로 된 기도를 하느님께 말씀 드리라고 하면서 가르쳐 주신 것이 주님의 기도다. 주님의 기도 첫 대목은 이렇다 :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나만을 위한 아버지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는 말이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힘있는 사람이나, 힘없는 사람이나 모두 똑같이 평등하게 부를 수 있는 아버지라는 말이다. 사람들 사이에는 불평등과 계급간의 갈등과 빈부의 격차 때문에 버려지고, 소외될 수 있으나,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사랑스런 당신의 자녀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아버지를 부를 때에는 적어도 그 분의 사랑스런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태생이 어떠하든, 부자이건, 가난하건, 힘이 있건 힘이 없건, 힘없는 자를 무시해서도 안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괄시해서도 안된다는 가르침이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는 호칭에 들어 가 있다.
이어서, «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소서 ».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려면, 내가 아버지의 아들 딸로서 제대로 살아야 가능하다. «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려면 내가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기 위해 내 삶의 자리에서 무언가 일을 해야 한다. 마냥 기다리기만 하고, 나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 그 나라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그러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주님의 기도 후반부에 나온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의 기도 대목을 하나하나 다 살펴 보려면, 오늘 밤을 새어도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간단하게 몇 구절만 살펴 보았다. 오늘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조용히 십자 성호를 그으면서 주님의 기도를 한 구절 한 구절 천천히 음미해 봄이 어떠하시겠는가? 부부끼리라면, 한 이불 덮고 함께 누운 채로 서로 손을 꼬옥 잡고 주님의 기도를 사랑하는 아내와 혹은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음미해 보면 어떻겠는가? 분명, 오늘밤을 하느님께서는 축복해주셔서, 오늘밤이 거룩한 밤이 되게 해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