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6일 교구 수호자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미사 강론

by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posted Dec 3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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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6 교구 수호자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신학생 시절, 나는 여행을 많이 다녔다. 사람들이 주로 많이 찾아 다니던 곳들보다는 사람들이 잠시라도 머물러서 전망 참 좋다고 하면서도 그저 한번 스쳐 지나가는 곳들을 주로 다녔다. 그런 곳 주위에는 민박집도 별로 없었고, 숙박시설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런 곳들에서도 숙박을 아주 저렴하게 혹은 공짜로 할 수 있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었다. 

풍광이 좋은 곳들을 지나칠 때면, 반드시 그 동네의 어르신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그분들의 말씀을 들어드렸다. 때로는 아, 그렇군요. 어이구 저런!, 그래서요? 라고 추임새를 넣어 드리기도 하고, 맞장구를 쳐드리기도 했다. 해가 뉘엿거릴 때 즈음이면, 어르신들 한 두 분이 자리를 뜨셨지만,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어디서 묵을 것인지 물어보곤 하셨다. 그러면, 이곳 풍광이 참 좋아서 그 동네에서 묵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러면, 대부분, 마을 회관에서 자고 가라고 하거나, 인정 많으신 분들은 당신들의 집에 빈방이 있으니, 자고 가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 밤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반드시 그분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 편지를 다음날 아침에 방을 내어준 분께 드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읽게 했다. 편지를 다 읽어 갈 즈음에 나는 하루만 더 이 동네에 묵으면 안되겠느냐고 여쭈었다. 그러면, 대부분,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이 방법은 내가 프랑스에서 유학을 할 때에도 자주 써먹었던 방법이었다. 다행히 대부분 다 통했다. 한동안 나는 이 노하우가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낯짝이 더 두꺼워서 철판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인 내 성격 덕분에 잘 먹혀 들어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러한 내 생각은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반겨 주고, 그에게 잠자리를 내어 주는 것은 그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평소의 사람됨됨이에서 비롯하는 것이지, 내가 유독 남들보다 낯짝이 두꺼워서, 들이대기를 잘 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낯선 사람 맞아들이기의 모범이신 마리아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리아에게는 하느님의 전령인 가브리엘이 낯선 존재였다.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라고 인사하는 순간, 마리아는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이어 가브리엘과 마리아 사이의 대화가 기술된다. 그 대화의 내용은 이미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낯선 존재로부터 하늘이 무너져 내릴 듯 한 소식, 바로 처녀가 아기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마리아는 기겁하며 놀랐을 것이다. 예수 시대 당시 일반 여성들은 초경이 시작될 무렵 결혼을 했으니, 마리아가 가브리엘의 말을 들었을 때에는 기껏해야 13살, 14살 남짓의 여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오늘 복음을 다시 한번 읽어보면, 우리는 행간 사이사이에 감추어져 있는 것들이 어마어마한 것들임을 그리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다. 가브리엘의 얼토당토 않은 말을 듣는 순간, 마리아는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했을까? 

      마리아가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다면, 손사래를 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것이다. 마리아가 강단 있는 사람이었다면, 재수없다고 그 낯선 존재를 향해서 꺼지라고, 돌아가라고 소리를 치든지, 아니면, 숫제 소금이라도 뿌렸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러지 않았다. 가브리엘의 말을 듣고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대답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청천벽력같은 말을 듣고서도 그런 대답을 할 수 있었던 마리아를 보면, 우리는 마리아의 평소의 사람됨됨이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어떤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그 사람의 평소의 마음에 있는 것이 입 밖으로 나오는 법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우리들 주위에는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개 존재의 무게감이 그리 무겁지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마리아의 평소의 사람됨됨이는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이 가져다 준 것이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는 가브리엘의 인사말은 주님과 함께 살고 있는 마리아, 기뻐하여라. 바로 그것이 은총이며, 너는 그 은총을 누리고 있다는 말이다. 누군가와 함께 삶을 살아 가고 있다는 것은 그의 말을 경청하려 애를 쓰고, 언제나 그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를 쓰고, 그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 가고 있다는 것, 곧 사랑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제나 주님과 함께 살고 있는 마리아였기에, 언제나 주님을 사랑하려고 애쓰며 살아 왔던 마리아였기에, 마리아는 가브리엘의 인사말에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대답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응답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이나 동영상을 보고 있을 때, 부모가 심부름을 시키면, 그 즉시 응답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짜증을 내는 아이들도 있다.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려 노력하는 아이, 바로 부모와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는 부모의 말씀에 응답을 한다. 그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있는 아이는, 부모와 함께 한 집 안에서 살긴 하지만, 부모와 함께 삶을 살고 있지 않은 아이는 부모의 말을 귀찮게 여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내가 즐겨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있음으로 인해,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하고자 하는 내 욕심으로 인해, 하느님을 나의 삶과 함께 하는 분으로 받아들이고 믿기 보다는 귀찮은 분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평소의 사람됨됨이는 어떠한가? 나는 낯선 존재를 귀하게 여기고, 그의 말을 들어 줄 준비가 되어있는가? 그를 받아들여줄 넉넉함을 가지고 있는가? 

오늘 복음은 나에게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내가 맺어온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지, 내가 나의 하느님,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하느님과 나는 정말로 함께 살아보려고 애를 쓰며 살고 있는지, 루카 복음 사가의 오늘 복음의 표현처럼, 곰곰히 생각하게 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