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3일 연중 제26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by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posted Dec 3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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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3일 연중 제26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신부로 살아가면서 아주 가끔씩 무력감에 빠질 때가 있다.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살 때,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날 때, 사람들이 나의 말을 곡해할 때특히 무력감을 느낀다. 예수께서는 여러분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하느님)을 전하시오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내 말 잘 듣는 사람, 나에게 호감이 있는 사람, 내가 호감 가는 사람에게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말귀를 당최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 나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통의 시대에, 내 말귀를 당최 안 알아들으려 하고, 귀를 막아 버리는 사람들에게도 하느님을 전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이야기하려고 하면, 쓰잘데기 없는 소리라고 무시해 버리고, 심지어 그 하느님을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하느님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오늘 복음은 요즈음 우리 시대에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간단명료하게 알리고 있다 : « 가시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여러분을 파견합니다 »(루카 10, 3). 죽음으로의 파견죽으러 나가라는 말씀이다. 설상가상으로, 죽으러 나가는데, «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 »라고 하신다. 

강론을 준비하면서 오늘 복음과 관련해서 이런 물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마음의 평안, 내 가족의 무사안일, 바라는 게 있다면 고작 이런 게 전부일 뿐인데, 목숨 걸고 하느님 전하라니 이 무슨 날벼락인가애써 신자 모으고, 예비자 교리 시켜서 세례 받게 하는 것만으로도 힘겹고, 벅찬 일인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목숨 걸고 하느님 전파하라고 하는가 ? 그런 일은 선교사들이나, 성직자, 수도자들이나 하는 일이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 

더군다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선한 사람보다 악한 사람이 출세하고, 착한 사람이 상을 받기보다는 무시당하고, 오히려 악한 사람이 성공하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레미아 예언자의  « 어찌하여 악인들의 길은 번성하고 성공하여 편히 살기만 하는가 ? »(예레 12,1)라는 2600년전의 물음은 여전히 그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생생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단호하게 예레미아의 물음에 대답하고 있다 : « 악인들이 풀처럼 돋아나고 나쁜 짓하는 자들이 꽃피듯 피어나더라도 그것은 영영 멸망하기 위함이다 »(시편 92,8). 당장에는 악이 승리하는 듯 보여도 오래 가지 못한다. 악한 자들은 풀과 같고 의인들은 나무와 같. 풀과 달리 나무가 자라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불의의 기세에 놀라지도 눌리지도 말자.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 믿으면 복이 있다는 말은 진리다. 그러나 그 복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갈망하는 부귀영화는 분명 아니다. 오늘 복음의 선교강령들에 지금의 우리 시대의 상황을 곁들이면, 아마도 히브리서 12장의 말씀이 아니겠나 싶다. 히브리서 12,2-13을 인용하면서 오늘 강론을 끝맺겠다.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죄인들의 그러한 적대 행위를 견디어 내신 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낙심하여 지쳐 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모든 자녀가 다 받는 훈육을 받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사생아지 자녀가 아닙니다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바른길을 달려가십시오. 그리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