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3일 월요일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미사 강론

by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posted Dec 3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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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23 월요일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2016광화문 광장을 수 백만개의 촛불이 밝히던 때, 시국미사도 참 많이 있었다. 당시 시국미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던 성경구절이 오늘 복음에 나온다 : «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루카 8, 17).

요즈음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이 « 차고 넘친다 »라 한다. 선출직 공무원 제1호와 그 부인의 도를 넘어선 말과 행동들이 차고 넘친단다. 퇴진이라는 단어는 이미 2년 전 2022년 하반기부터 나왔고, 지난해 2023년 전반기인 5월부터는 탄핵이라는 단어도 심심찮게 들린다. 오늘 복음의 «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 »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역사적 사실이자, 진실로 입증되어 왔다. 

오늘 나는 이 미사가 끝나는 대로, 서울로 가서, 오후 3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한국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 설립 50주년 기념미사에 참석한다. 

오늘 강론의 맺음말은 사제단 설립 50주년 기념 성명서를 낭독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50주년 성명서]  

사제단을 일으켜 세운 순교자들

1. 50년 전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신부들이 안락한 성소를 박차고 서울로, 명동으로 집결했던 것은 주교 지학순의 수감 때문만도 아니요, 독재자 박정희의 폭압 때문만도 아니었으니 그것은 이곳 지하묘소에 잠들어 계시는 순교자들의 비상호출 때문이었다고 믿습니다. 열린 세상을 꿈꾼 죄로 국가폭력에 희생되신 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우리 강토 곳곳에 뼈를 묻으신 순교자들의 천둥 같은 부르심이 아니었으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은 출현할  없었으며, 반세기에 이르는 줄기찬 실천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제단의 등장 이후 한국천주교회는 비로소 마땅히 가야했으나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새롭고 험한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2. 그런데 우리가 <제1시국 선언문>에서 천명했던 “유신헌법 철폐와 민주헌정 회복/ 국민 생존권과 기본권 존중/ 서민대중을 위한 경제정책 확립”은 지금 짓다만 밥처럼 이도저도 아니게 돼 버렸습니다. 애국청년학생, 노동자와 농민, 양심적 지식인과 종교인들이 살벌하고 교활하고 악랄했던 독재 권력에 맞서 피눈물 흘려가며 이룩한 성취가 급속도로 무너져 내리고 있으니 어찌해야겠습니까? 다시 한 번 민주의 이름으로 크게 일어설 때가 왔음을 말씀드립니다. 

3. 지난 달 사제단은 두만강, 압록강을 순례하였습니다. 조선의 첫 신학생들이 건너갔고 다시 건너온 거기서 “진리의 찬란한 빛 담뿍 안고 한 떨기 무궁화로 피어나신” 선배들의 고결한 삶을 돌아보았으며, 손에 닿을 듯 가까운 북녘의 산하를 눈으로 어루만지면서 우리가 생나무 절반이 찢겨나간 이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지나온 오십 년을 돌아보고 나아갈 오십년을 내다봅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을 살고 있으니 우리는 두려 없이 내일을 건설할 것입니다. 맡겨진 일을 피하거나 미루지 않을 것입니다. 짐도 무겁고 길도 멀지만 믿음도, 사명도 주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우리의 멍에는 가볍고 편합니다.   

4. 사나운 폭염 아래 줄곧 시달리다 한여름 못잖은 가을 더위 속에서 지칠 대로 지쳐버린 모든 분들에게 위로를 보냅니다. 먼 옛날부터 착한 사람들이 똑같은 반복하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어찌하여 악인들의 길은 번성하고 성공하여 편히 살기만 하는가?”(예레 12,1) 성경의 대답은 단순하고 단호합니다. “악인들이 풀처럼 돋아나고 나쁜 짓하는 자들이 꽃피듯 피어나더라도 그것은 영영 멸망하기 위함이다.”(시편 92,8) 당장에는 악이 승리하는 듯 보여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악한 자들은 풀과 같고 의인들은 나무와 같습니다. 풀과 달리 나무가 자라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므로 불의의 기세에 놀라지도 눌리지도 맙시다.  

5. 이참에 세상을 치명적으로 병들게 만드는 사회적 현상 하나를 말씀드립니다.  그것은 종교가 공정을 외면하고 정의구현이라는 직무를 팽개치는 태만입니다. 공정은 지상에 구현되어야 하는 하늘의 명령이고, 정의는 그것을 바르고 의롭게 펼치는 사람의 도리입니다. 7,80년대 교회가 그나마 떳떳하고 듬직했던 것은 공정의 집행인 정의를 최소한의 애덕으로 여기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바야흐로 이른바 ‘대붕괴의 시대’를 맞이한 오늘, 교회마저 세상의 슬픔과 번뇌를 외면한 채 자신의 안일에 몰두한다면 사람들이 서러운 눈물을 어디서 닦겠습니까? 우리부터 사제단을 결성하던 때의 순수하고 절실했던 초심으로 돌아가겠습니다.   

6. 투쟁은 쉽고 건설은 어렵습니다. 저항은 쉬우나 참여와 창조는 힘이 듭니다. 밤낮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일로매진하는 검찰독재의 등장은 민주화 이후 우리가 무엇을 고쳐서 무엇을 창조해나갈 것인지, 그리하여 어떤 나라를 이룩할 것인지 목표와 의지가 흐릿해지면서 벌어진 변칙 사태라고 하겠습니다. 지금이라도 갈 길이 어느 쪽인지 분명하게 정하면 됩니다. 우리는 하나에서 나온 한생명이니 살림도 ‘한살림’이어야 합니다. 저만 알아 저만 살자는 살벌한 각자도생은 그 누구에게도 안전한 미래가 아닙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사이의 불신과 미움을 포용과 이해로 바꿉시다. 너와 나의 뜨거운 사랑을 상생의 에너지로 바꾸기만 하면 얼마든지 쳐낼 것을 쳐내고, 버릴 것은 말끔히 태워서 거룩한 선열들이 꿈꾸던 미래를 향해 전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넘어서 기묘하게 일하시는

하느님께 찬미와 찬송을 드리며 

2024년 9월 23일 

명동성당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