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성가정 축일 강론)

 

십자가로 결속된 성가정

 

가톨릭 교회법에서 혼인의 목적은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부부 사랑이고, 둘째는 자녀 양육입니다. 성가정 축일을 맞아 여러분들의 혼인 생활은 어떻습니까? 혼인의 목적대로 사랑의 결실을 맺고 살고 있는지요? 아니면 쇼윈도 부부, 혹은 무늬만 부부입니까?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부부는 어땠을까요? 혼인의 목적을 이루었을까요? 잘 알다시피 요셉은 동정 잉태 사실을 받아들였고, 아내와 아들을 지키기 위해 헌신합니다. 요셉은 그저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만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음도 믿음이었지만 그는 마리아를 진정 사랑했고 존경했습니다. 천주교 혼인식에서 신랑과 신부는 세 가지를 서약합니다. 사랑과 신의와 존경입니다. 이 세 가지 서약의 근원은 마리아와 요셉에게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서로 사랑했고 신의를 지켰으며 존경했습니다. 부부가 함께 동정을 지키는 것도 신의를 지키는 행위입니다. 비록 동정 잉태를 통해 아들이 태어났지만 마리와와 요셉은 그 어떤 부부들보다도 아들을 사랑으로 양육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끝납니다. “예수님의 지혜와 키는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 예수님 스스로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지만 인간의 모든 처지를 받아들이는 이상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지혜와 신체는 물론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장한 것인지만 부모의 도움도 한몫했습니다. 또 부모의 사랑 속에서 예수님은 너그럽고 따뜻한 사람으로 성장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곧잘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저 사람은 부모한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는가 봐. 저렇게 주변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아니 말이야.”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은 부모의 영향을 받았음이 틀림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잃어버린 아들을 애타게 찾는 부모의 이야기입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인간적으로는 섭섭한 말이지만 아들의 사명은 예수라는 이름을 천사가 알려줄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 예수님은 한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명을 지닌 구세주였습니다. 이를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하지만 부모는 이 일을 마음속에 간직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공생활 전까지 부모에게 순종하며 지냅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하느님이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 부모에게 순종한다는 것이. 그만큼 구세사에 있어서 가정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가정 축일을 맞아 이혼자가 없는 도시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발칸반도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라는 작은 나라가 있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에 둘러싸여 있고, 2022년 통계로 볼 때 인구는 325만 명 정도이다. 무슬림이 50%, 정교회는 30% 그리고 가톨릭 신자들이 15%를 차지하고 있다. 그곳에 시로키브리예그라는 소도시가 있다. 도시민 모두가 가톨릭 신자이다. 그들은 그 누구도 이혼하지 않는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26,000명이 조금 넘는 주민 가운데 헤어져 사는 가정은 없다.

 

시로키브리예그 사람들은 여러 세기 동안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들의 가톨릭 신앙은, 처음에는 튀에르키르 무슬림으로부터 그리고 후에는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가톨릭 신앙을 지키기 위해 비싼 대가를 치르며 배웠다. “구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주어지는 것이다.”

 

그 지혜의 부산물로 다음 같은 혼인 문화가 형성되었다. 혼인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온전히 결합시키는 것이다. 인간 생명을 탄생시키는 혼인을 신적 생명을 탄생시키는 십자가의 토대 위에 안치시킨 것이다.

 

약혼자들은 혼인하기 위해 성당에 갈 때, 십자가 하나를 가져온다. 사제는 그 십자가를 축복하고 나서, 삶을 함께 나눌 파트너를 찾았느냐고 묻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을 배우자의 십자가를 찾았습니까? 당신들이 사랑해야 할 십자가이고 당신들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를 내팽개쳐서는 안 됩니다. 가슴 깊이 간직하고 언제나 보존하십시오.”

 

그들이 혼인 서약을 할 때, 신부는 오른손을 십자가 위에 올려놓고 신랑도 그 신부의 손 위에 자기 오른손을 포갠다. 그렇게 그들 서로가 십자가와 하나가 된다. 그들이 기쁠 때나 고통 가운데서나 서로 사랑하고 신의를 지키겠다는 혼인 서약을 예절에 따라 선언하고 교환할 때, 사제는 영대로 그들의 손을 덮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십자가에 입을 맞춘다. 만일 두 사람 가운데 하나가 배우자를 버린다면,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버리는 것이다. 예수님을 잃게 되는 것이다. 예절이 끝난 후, 이 신혼부부는 신방의 문을 넘어서 좋은 곳에 십자가를 모신다. 그때부터 이 십자가는 그들 삶의 기준이 되고 그곳은 가정 기도의 장소가 된다. 이 젊은 부부의 가정은 그렇게 십자가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혼인 생활의 위기, 그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대응 태도는 달랐다. 역경이 그들에게 닥칠 때, 변호사나 상담 심리 치료사 혹은 점쟁이에게 달려가지 않는다. 그들은 먼저 십자가를 찾는다. 두 사람은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각자의 마음을 열고 주님의 도우심에 호소하며 서로를 용서할 힘을 청한다.

 

이와 같은 실천적 신심은 어린 시절부터 습득되었다. 어린이들은 날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를 주님께 감사하며 경건한 신심으로 십자가에 입을 맞추도록 교육받으며 성장한다. 그들은 날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두 팔로 보호해 주시기에,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확신 속에 잠자리에 든다. 모든 두려움은 십자가의 예수님께 입을 맞출 때 사라진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불가분리적으로 일치하여 존재하는 것이기에,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지켜지고 살아남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속된 세상 속에서 더없이 필요한 지혜요 덕목이라 할 수 있다.

 

혼인하는 인간은 나약하고 부족하지만 혼인을 성사로 맺어주시는 하느님은 완전합니다. 그래서 혼인은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신성한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 신성함을 깰 수 없습니다. 그럼 이제 혼인 갱신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해당하는 부부들은 모두 일어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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