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2024년도 주님 성탄 대축일 낮미사 강론

 

오늘 요한복음 서장은 알아듣기가 어려운 내용입니다. 일명 로고스 찬가라고 불리는 오늘 복음은 생명, , 말씀, 은총 등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단어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요한계 문헌 신학을 모르면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한 문장으로 압축이 되는데,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입니다. 여기서 사셨다를 직역하면 천막을 치셨다입니다. 천막은 이스라엘 백성의 이동식 생활 공간으로써 탈출기를 보면 백성 가운데에서 함께 생활하신 하느님 현존을 상징합니다. 풀이하면 하느님께서 인간들과 함께 사시기 위해 같은 처지의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강생의 신비를 뜻합니다.

 

가끔 천주교 신자들 중에서도 예수님이 그저 예언자나 성인 같은 훌륭한 인간이지 하느님이라고 믿기 어렵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신이 인간이 된다는 것을 누가 증명하겠습니까? 인간으로서 죽임을 당하셨지만 끝내 부활하셨기에 신이라고 하는데, 그것 또한 누가 증명하겠습니까? 강생이니 부활이니 하는 것은 사실 증명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의 대상이고 체험의 대상입니다. 굳이 증명하라고 하면 제자들이 그것을 믿었고 목숨으로 증거했다는 것뿐입니다.

 

아무튼 하느님의 입장에서 보면 신이 인간이 되는 것은 모험이고 수치입니다. 게다가 그 신이 인간과 동고동락하는 것도 여간 자기 자신을 죽이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온전히 자신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랑하지 않으면 포기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자기 양도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했지만 인간은 하느님을 버렸습니다. 인간은 빛을 거부하고 어둠을, 생명을 거부하고 죽음을, 환대를 거부하고 외면을, 은총을 거부하고 율법을 택했습니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 10-11)

 

결국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한 것을 후회하시고 벌을 내려야 마땅하지만 하느님은 진노를 거두시고 당신의 백성을 끝내 사랑하고 연민하여 스스로 인간이 되셨고, 인간의 언어로 우리에게 참된 구원을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사실 하느님은 이 세상에 살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죽으러 오셨습니다. 마치 화염 속에 갇힌 자식을 구하기 위해 불길에 뛰어드는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축복되고 아름다운 성탄에 고맙고, 미안하고, 애잔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하느님의 사랑이 그토록 처절하기 때문입니다. 가끔 동기 신부들이 제게 신학생 시절부터 붙여준 별명이 있습니다. “무모한 열정”. 그 닉네임은 변화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무모하게 도전하고 투신한다는 의미입니다. 바위에 계란치기라도 말입니다. 아무리 신자들이 변화되지 않는다 해도 사목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이 본당을 떠나는 순간까지 공동체의 성장과 일치를 위해 계속 일을 해나가야 하는 이유는 목자는 아무리 양들이 말을 안 들어도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제인 제가 이럴진대 하물며 하느님께서야 더 하시지 않겠습니까?

 

인간이 배신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하느님은 인간을 버릴 수 없습니다. 아비가 집 떠난 자식을 버릴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사가의 말대로 우리는 은총에 은총을 받았습니다. 은총은 공짜 선물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드린 것 없이 거저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신 날, 성탄을 경축한다는 의미는 첫째 그분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는 것입니다. 그분의 마음은 측은지심이고 동병상련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도 없고, 나눠주지 못할 사람도 없으며, 축복하지 못할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첫째 내 마음속에, 둘째 본당 공동체와 가정 공동체 안에, 셋째 내가 속해 있는 지역사회 안에서 태어나셔야 합니다.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반기며 우리 모두 그 빛을 따라가도록 합시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1 다해 연중 제3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5.01.28 10
80 다해 연중 제2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5.01.20 15
79 다해 주님 세례 축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5.01.12 10
78 다해 주님 공현 대축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5.01.05 10
77 다해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5.01.02 6
76 2024년 송년미사 강론 주임신부1004 2025.01.02 4
75 다해 성가정 축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12.30 7
» 다해 주님 성탄 대축일 낮미사 강론 주임신부1004 2024.12.26 18
73 다해 주님 성탄 대축일 밤미사 강론 주임신부1004 2024.12.26 8
72 다해 대림 제4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12.22 6
71 다해 대림 제3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12.18 8
70 다해 대림 제2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12.12 7
69 다해 대림 제1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12.12 12
68 나해 연중 제33주일 강론: 종말의 시대 주임신부1004 2024.11.18 28
67 나해 연중 제31주일 강론; 사랑의 이중계명 주임신부1004 2024.11.04 23
66 나해 연중 제30주일 강론: 다시 본다는 것 주임신부1004 2024.10.27 14
65 나해 연중 제29주(선교주일)강론 주임신부1004 2024.10.24 11
64 나해 연중 제28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10.13 10
63 나해 한국 순교자 대축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9.23 21
62 나해 연중 제24주일 강론: 반석의 또 다른 이름, 사탄 주임신부1004 2024.09.19 1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 6 Nex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