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대림 제4주일 강론)

 

두 여인의 만남

 

왜 마리아는 사촌 언니 엘리사벳을 찾아 유다 산악 지방으로 먼 길을 떠났을까요? 루카 복음은 세례자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를 항상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1장에 보면 먼저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가 나옵니다. 그리고 6개월 후 예수님의 탄생 예고, 즉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의 동정 잉태를 알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 탓인지 예수 성탄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일인 624일로부터 딱 6개월 이후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인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이야기가 뒤 따라 나오고, 미사 전례의 화답송처럼 이어서 마리아의 노래가 등장하고, 그다음 세례자 요한의 탄생 이야기, 그리고 이어서 즈카르야의 노래가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2장으로 넘어가는데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했던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와 천사들의 노래가 등장합니다.

 

종합하면 6개월 터울을 가지고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인 세례자 요한과 신약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이 두분의 탄생 예고와 탄생 이야기가 주거니 받거니 번갈아 가며 나오는데, 그 중심에 오늘 복음,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와 구세주 예수님의 어머니가 상봉하는 장면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두 어머니의 만남이 중요한 이유는 신약과 구약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가 가리키는 메시아의 왕림은 세례자 요한을 통해서 이제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실현됩니다.

 

위대한 예언자를 낳은 엘리사벳과 흠숭하올 구세주를 낳은 마리아는 구세사의 가교역할을 하신 훌륭한 여인들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들은 가련하고 초라한 인간들을 대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이를 못 낳는 고령의 여인을 통하여, 그리고 시골 출신의 동정녀를 통하여 당신의 구원 사업을 완성시키십니다.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가난하고 아는 것 없는 민초들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보잘것없는 여인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위대한 역사를 써 내려가십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혼자 이 일을 하지 않으시고 두 여인의 동의와 협조 가운데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오늘 엘리사벳의 태 안에서 뛰노는 아기는 세례자 요한입니다. 이제 마리아의 태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만나 뵙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리고 이제 마리아를 통해 믿음의 백성들이 태어나게 되었으니 이 또한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마리아는 믿음의 여인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믿음의 백성인 교회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복음이 무엇입니까? 기쁜 소식 아닙니까? 무엇이 기쁜 소식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음의 백성들이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닙니까? 성모님의 믿음은 곧 우리 신앙인들의 믿음입니다. 성모님을 통하여 우리도 주님께 믿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질 수 있습니다.

 

신앙인 여러분들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OECD 국가 중에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는 그리 높지 않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고 생활이 편리해졌으며 기대수명도 늘고 있지만 행복지수는 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한 마디로 정신 문화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시골 여인들이었지만 행복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하고 힘이 없지만 겸손하고 믿음이 충만한 여인들을 통하여 구세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이제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부디 이 시대에 필요한 정신 문화의 근원을 엘리사벳과 마리아에게서 찾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물질과 육신 등 피조 세계에서 모든 것을 찾고, 힘 가진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짓밟고 내리누르며, 하느님이 없어도 인간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이 차갑고 병든 시대에 종교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인간이 참으로 인간다워질 수 있는 길, 그리고 우리 모두가 차별 없이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길, 곧 복음의 길을 가는 것이 진정 이 시대의 종교의 역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성탄을 준비하면서 마리아의 노래와 즈카르야의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그 안에 모든 답이 있습니다. 다들 집에 가셔서 꼭 한 번 소리내어 읽고 묵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루카 복음 1장입니다.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삶이 과연 행복의 길인지 불행의 길인지 모든 답들이 거기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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