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33주일 강론)

 

종말의 시대

 

어느덧 전례주년에 따른 교회 달력은 끝을 향해 내달리고 있습니다. 오늘이 연중 제33주일이고, 다음 주가 나해의 마지막 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이제 한 해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는 위령성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전례력 상 한 해의 끝, 그리고 인생의 끝인 죽음을 묵상하는 11월 위령성월은 오묘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11일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는 새해를 주님께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신앙인의 모범인 성모님을 따라 지금까지 신앙의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이제 한해의 끝자락에서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참된 종말이 무엇인지를 묵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종말, 그러면 일반인들은 사이비 종교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구 멸망이나 휴거를 떠올리곤 합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에게 종말이란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종말이란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성을 말합니다. 그래서 현세의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구원의 희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마지막 순간을 고대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사심판이고, 보편적으로는 공심판 교리가 이것에 해당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공심판을 언급하십니다. “그 무렵 큰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사람들이 볼 것이다.”(마르 13, 24-26) 여러분들은 이 대목을 어떻게 읽으셨습니까? 글자 그대로 천체 변화에 따른 지구 종말을 상상하면 이단에 빠지게 됩니다. 사이비 종교가 공포심을 조장하는 대목이기도 한데요,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하여 만든 영화에서나 가능한 장면이겠지요. 어떤 SF 작가는 예수 재림을 우주 종말 후 외계인의 등장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상들은 모두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묵시문학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언급하신 종말에 관한 묘사는 구약성경의 예레미야서나 다니엘서를 인용한 것입니다. 묵시문학은 온갖 상징과 암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문학 양식 안에 숨은 뜻을 보지 못하면 전혀 엉뚱하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묵시문학은 이스라엘을 둘러싼 근동의 대제국들의 침탈과 박해 속에서 생성된 작품입니다. 우리가 다음 주 목요일 특강으로 듣게 될 요한 묵시록도 마찬가지이지요. , 로마 박해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묵시문학은 지금은 박해라는 시련 속에서 고통받고 있지만, 그 끝이 멀지 않았으니 인내하며 믿음을 끝까지 지키면 구원받는다는 메시지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묵시록은 희망의 책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예수님은 미래의 제자들이 받을 박해와 수난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고별사 대목을 보면 잘 나와 있지요. 그리고 공관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패망을 예고하시고 백성들이 당할 시련과 고통을 생각하시고 눈물을 흘리시기까지 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회개하고 박해를 잘 견디어 내기를 바라셨습니다. 집회서 말씀처럼 황금은 굴욕의 화덕 속에서 더 단련되듯이 말입니다. 따라서 종말이라는 말은 미래에 있을 비극적인 멸망을 걱정하고 겁먹으라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불의하고 폭압적인 권력이라도 다 끝이 있으니 지금의 시련과 고통을 인내하며 구원의 때를 기다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개인적인 죽음인 사심판과 예수 재림의 공심판의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의 간격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하느님 안에서는 찰나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긴장감 속에서 항상 깨어 있는 자세로 그리스도를 제대로 추종해야 할 것입니다.

 

영국 희극 작가인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라고 새겨져 있다고 하지요. 아무도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매일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의 때는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유일회적인 인생과 하루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위령성월,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묵상해 보십시오. 그 순간이 삶의 완성작일지 아니면 실패작일지는 지금의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에서 지금의 나를 돌아보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분명히 보일 것입니다. 일찍이 솔로몬 대왕은 인생의 덧없음을 고백하면서 이 또한 다 지나간다.’라고 말했지만 그 지나가는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서 내 삶을 완성합니다. 100세 인생이라고 하지만 정말 인생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새의 그림자와 같으니 선을 행하고 사랑만 하고 살아도 모자란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 공동체는 13명의 예비신자들이 빛의 자녀로 태어나는 세례식을 거행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한 삶과 죽음을 초월합니다. 진짜 생명은 잠시 머무르는 육신 생명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영신 생명입니다. 생명이신 하느님 안에 머무르는 한 우리는 죽지 않을 것이며, 영원한 복락을 누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은총은 이미 지금 이 현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며 행운아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선택해야 하는 것은 회개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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