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평신도 주일로 일반 신자께서 강론을 낭독하셨습니다만 매주 강론을 기다리시는 교우분들을 위해 주임신부님께서 준비하신 강론을 공유 드립니다.
연중 제32주일(나해, 2024년 11월 10일)강론
오늘은 연중 제32주로서 우리 교회에서는 ‘평신도 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교회의 사제와 수도자들은 한 지역으로 파견되어 사목하다 떠나는 손님이며, 평신도가 교회의 주인이라는 소명의식을 지니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인 ‘왕직’, ‘사제직’, ‘예언직’을 잘 수행하도록 평신도의 역할을 강조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두 과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제1독서에 나오는 사렙타 과부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이웃 사랑을 마지막 남은 음식으로 실천했고, 복음의 가난한 과부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진 돈을 모두 봉헌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 더 궁핍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하느님 계명을 완전하게 지키고 있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신자들은 가진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비롯되고 하느님께서 모든 것의 주인임을 고백하는 행위로 교무금과 헌금을 봉헌합니다. 이는 신자들이 자신의 몸은 물론 가진 모든 것은 하느님에게서 비롯된다는 신앙고백의 중요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알몸으로 태어난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셨고, 그중에서 제일 좋은 것 1/10을 봉헌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십일조라고 부릅니다.
레위기를 보면 “땅의 십 분의 일은, 땅의 곡식이든 나무의 열매든 모두 주님의 것이다. 주님에게 바쳐진 거룩한 것이다”(레위 27,30)라고 하신 말씀에서 십일조의 근거를 찾습니다. 하지만 신약에 와서 예수님은 단 한번도 십일조를 지키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톨릭의 일반 헌금규정은 십일조가 아니라 삼십일조 즉, 한 달에 하루 몫을 하느님의 몫으로 바치도록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헌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오늘 복음의 과부가 낸 헌금처럼 자신의 처지가 어떠하든, 자신의 희생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기쁜 마음으로 정성껏 헌금을 할 수 있다면 이것이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헌금과 관련된 한 예화가 떠오릅니다.
헌금과 관련된 한 예화가 떠오릅니다.
한국에서 가난한 청년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둘은 서로 성공을 다짐하면서, 성당에 가 하느님께 평생 동안 자신의 수입의 1/10을 바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그 둘은 매달 자신의 수입에서 무조건 1/10을 떼서 성당에 봉헌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수입이 워낙 별 볼일이 없어 수입의 1/10은 아주 적은 액수였지요.
시간이 지나 두 청년 중 한 사람이 크게 성공한 사업가가 됐습니다. 또 다른 청년 역시 그렇게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둘은 자신들이 약속했던 수입의 1/10을 바치겠다는 약속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둘 중 성공한 청년에게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친구를 찾아가 말합니다.
“여보게 친구, 사실 내가 젊은 시절에 자네와 함께 맺은 약속을 이제는 취소하고 싶네. 내가 내 수입의 1/10인 10만 원을 성당에 봉헌할 때는 조금도 아깝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 1/10이 몇백만 원씩 되다 보니 얼마나 아까운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네.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이 행동을 그렇게 오랫동안 했으니 이제는 그만둬도 되지 않을까?”
그러자 이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는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이 친구가 한 달에 수천만 원씩 버는 것이 이제 싫은가 봅니다. 도로 10만 원씩 봉헌하는 사람이 되도록 해 주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함을 잊지 않고 겸손하게 나누며 살아야 하느님의 축복이 지속됩니다. 많은 축복을 받고도 하느님께 감사의 표현을 지속하지 못해 그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을 성경 안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돼서는 안 될 터인데 우리 현실은 어떠합니까? 천주교 신자들의 봉헌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가난한 과부의 정성어린 헌금에 한참 못 미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십일조를 내면 죽는 줄 알고, 개신교 신자는 십일조를 안내면 죽는 줄 안다.”라는 웃지 못할 말도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과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렙톤 두 닢마저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온전한 사랑을 지닌 참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렙톤 두 닢은 한국 돈으로 약 1400원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하느님께 온전한 사랑을 드리지 못하고 물질에 대한 욕심, 자식에 대한 욕심, 사업에 대한 욕심, 건강에 대한 욕심을 지닌 채 자신의 교만과 자존심을 남겨두고 있지는 않은지요?
이제는 가난한 과부의 봉헌 정신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즉, 자신의 처지에 합당하고 정성을 다해서 봉헌할 수 있는 주님 사랑의 마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들도 주님으로부터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