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일(나해, 2024년 11월 3일)강론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열린 마음을 가진 율법학자에게 사랑의 이중계명 즉,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최상의 계명임을 가르치십니다. 그것도 오늘 1독서 신명기에 나오는 ‘쉐마! 이스라엘’이란 형식을 빌어서 강조하십니다. ‘쉐마 이스라엘’ 즉 ‘이스라엘아, 들어라!’라는 이 구절은 유대교 신앙의 핵심으로서 경건한 유대인들이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에 꼭 이것을 외웁니다. 그들은 또 쉐마!로 시작되는 이 구절을 감아 넣은 작은 원통을 자기 집 문에 매달기도 하며 이마에 붙이고 다니기도 합니다.
오늘날도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보면 유대인들의 집 대문 옆에 이 구절을 넣은 작은 작대기 모양의 원통이 부착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하느님의 법을 사랑하면서 율법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구약의 신명기는 하느님 사랑만 언급하지만 신약의 예수님께서는 이웃 사랑을 함께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차이점이라 하겠습니다. 사랑과 관련된 한 예화가 생각납니다.
자기 집은 없고 남의 집만 열심히 지은 어느 가난한 건축가가 부동산 사업을 하는 절친한 동업자 친구로부터 자신이 살 멋진 집 한 채 지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오래된 친구가 살 집이라 최선을 다해 지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는 온갖 정성을 다했습니다. 자재를 구입할 때는 언제나 최상품을 골랐고, 일정한 양생기간이 필요한 공정에는 아낌없는 시간을 투자해 충분히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정성을 다해 훌륭한 집이 완성됐을 때, 사업을 하는 친구는 이를 기념하는 커다란 파티를 열었지요. 그리고 파티가 끝날 무렵 돈이 많던 이 사업가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가난한 건축가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마음을 다하여 이렇게 훌륭한 집을 지어주니 너무나 고맙네. 친구가 최선을 다해 지은 이 집을 내가 지금까지 받은 수많은 은혜를 생각해서 자네에게 선물하려고 하네. 받아주게나!”
사업을 하는 친구는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고 자기 집을 지을 것처럼 말했었지요. 그러한 의도를 전혀 눈치 못 챘던 건축가는 ‘자기의 집을 짓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는데, 결국은 정말로 ‘자신의 집’을 지은 셈이 된 것이지요.
만약 이 건축가가 좀 더 이익을 남기려는 생각에 대충대충 그리고 건성건성 집을 지었다면 어떠했을까요? 나중에 후회를 해도 크게 했겠지요. 하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아주 멋진 집, 최고의 집을 선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업가가 건축가에게 멋진 집을 지어달라고 하듯이, 주님께서도 우리 각자에게 이 세상에 멋진 집을 지어달라고 하십니다. 그 자재는 사랑입니다. 최고의 자재인 사랑을 이용해서 가장 멋진 집을 만들어 달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데, 과연 여러분은 어떻게 집을 짓고 있는지요?
더군다나 최고의 사랑이라는 재료가 최대의 효과를 보기 위해선 오랜 양생기간도 필요한데, 우리는 얼마나 기다림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을까요? 즉, 나의 가족이나 이웃을 얼마나 이해하고 그들의 잘잘못에 대해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고 있었나요? 혹시 조금도 참지 못해서 결국 ‘사랑’이라는 자재를 망가뜨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주님께서 지어달라고 하신 그 집은 결국 우리가 들어가 살 집입니다. 즉,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가 바로 우리가 만들어서 들어갈 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을 통해 사랑이라는 원자재와 인내, 용서, 배려, 나눔과 같은 부자재들을 활용하여 내가 살아야 할 정말 멋진 집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입니까?”라는 율법학자의 질문에 ‘사랑’이라고 답변하면서, 사랑이야말로 최고의 자재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자재의 활용은 우리의 몫에 달려있음을 이야기하십니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에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을 총동원해서 멋진 사랑의 건물을 완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혹시 부실공사로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는 집에 살고 싶으십니까? 그렇지 않겠지요. 따라서 최고의 사랑을 동원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자신처럼 생각할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몇백 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집, 그렇게 튼튼한 집에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장기적인 경제불황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마음도 메마르게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예수님을 따라 아름다운 사랑으로 생명을 가꾸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바로 나, 당신, 우리가 그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작은 사랑의 몸짓이 촉촉한 단비가 되어 메마른 세상을 적시고 생명이 움트게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쁨과 희망을 가슴에 가득 담고 오늘도 서로 자신을 내어놓는 아름다운 사랑의 길을 걸어갑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