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30주일 강론)

 

다시 본다는 것

 

결론: 신앙생활이란 주님을 통해서 나와 세상을 다시 보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눈먼 거지의 이름은 바르티매오입니다. 여기서 바르는 아들이라는 뜻이니, 본명 자체가 티매오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상 본인의 이름이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의 실제 이름을 모릅니다. 또 이름이 없다는 것은 존재 가치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요. 그만큼 그의 이름은 관계가 단절되어 외롭고 형편이 어려워 고달픈 삶의 비참한 상태를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바르티매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눈먼 거지의 기적 이야기는 그저 육체적인 치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이야기를 영성적으로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신과 세상을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주님만이 유일한 참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빛을 통하지 않고서는 나는 항상 내가 만들어낸 그릇된 이미지로 내 자신과 세상을 해석합니다.

 

대부분 우리는 참 자아와 거짓 자아를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참 자아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어 세상에 보내실 때 가지고 있었던 본래의 모습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이기 때문에 이미 우리 안에 하느님의 선성(善性)을 가지고 있다. (이기적인 신생아기를 보낸 인간은 차차 이타적인 연민과 공감 의식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슈퍼맨 한 꼬마의 꼬꼬 사랑) 이것은 선천적이고 초월적인 것입니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느님을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 선성에 상처를 입습니다. 인간관계에서의 거절, 비난, 수치, 창피, 사기, 배신, 버림받음, 방치, 학대, 폭력, 실패, 상실 등 우리 내면 안에 고통의 주머니가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자기 생존 본능이 발달하여 참 자아가 주는 선성을 흡수하지 못하고 이기심, 교만, 질투, 분노, 공격성, 외로움, 죄책감, 중독, 집착, 자존감 결여, 공포, 우울, 대인 기피, 정신 장애 등 내가 만들어낸 거짓 자아를 내 모습으로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이것을 영적인 어둠의 상태라고 말합니다. 하늘에 잔뜩 먹구름이 끼어 있어 햇빛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참 자아를 회복하는 길은 그 먹구름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먹구름을 제거하는 방법은 첫째, 거짓 자아가 본래의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참 자아와 거짓 자아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합니다. 극단적으로 화가 날 때 숨부터 고르고 대응하라고 하지요. 화가 난 상태에서 하는 말은 제 정신(본래의 나)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또 누군가를 용서 못하는 것은 본래의 내가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와 분노가 그 사람을 용서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내 안에 이미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사랑받아야 할 참 자아가 있음을 의식하고 그 자아가 활동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 신앙인들은 성령을 초대하고 그분께서 활동하실 수 있도록 마음의 자리를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내 안의 악은 선을 행함으로 상쇄되는 것이지요. 또 악은 또 다른 악을 부르고, 선은 또 다른 선을 부른다고 하지요. 그러나 인간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오늘 눈먼 거지처럼 주님을 간절히 불러야 합니다. 성령께 맡겨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 즉 마음의 기도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한편 참 자아를 만났을 때 내면 아이도 함께 만나게 됩니다. 그 아이를 안아주고 보듬어 주어야 합니다.(부모에게 차별받거나 버림받은 아이, 선생님께 수치를 당하거나 상처받은 아이, 신혼 때 싸우고 여진히 아이처럼 울고 있는 아이) 괜찮아. 괜찮아. 이 부분과 관련된 상세 내용은 다다음 주 화요일 저녁 미사 후 신앙 아카데미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셋째, 소유가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합니다. 소유(육신의 만족과 편함)는 항상 공허와 결핍(하느님과 인간이 빠져 있기 때문에 충족이 안된다.)이 따라 다닙니다. 그러나 의미는 행복과 기쁨을 선사합니다. (사제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축복이다.) 의미 있는 일을 했을 때 나는 충만해지고 지치지 않습니다. 어떤 평신도가 다음과 같은 글을 신자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사제는 늑대들과 맞서 싸우면서 끊임없이 양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사제는 쏟아붓고 또 쏟아붓습니다. 그러나 뭔가 안으로 흘러 들어와 채워지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어느 순간, 내면이 텅 비어 버린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사제들은 계속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일까요?

바로 당신

-지독할 정도로 내면이 허기진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열정을 다해 자유롭게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는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애쓰고 있는 십대 청소년,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찾은 희망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어머니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평화를 찾아, 희망을 찾아 그리고 공동체를 찾아 용기 내어 처음으로 교회의 문을 두드린 당신, 그리고 스스로 교회 안으로 걸어 들어온 당신,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사제에게는 신자들이 삶의 의미입니다. 그 의미를 추구하는 이상 사제는 상처받아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의미가 모든 것을 견디어 낼 수 있는 초월적인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눈을 다시 떠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입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은 곧 내 안에 참 자아가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자아는 하느님께서 사랑과 축복으로 창조하셨기에 내 인생을 긍정해야 한다는 믿음입니다.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치유 기적 이야기는 눈먼 거지가 주님의 제자가 되어 그분을 추종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우리의 인생은 주님과 함께 걷는 여정입니다. 때로는 먹구름이 끼어 있어 날씨가 흐릴 때도 있지만 내면의 날씨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지요.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우리 인생의 날씨는 화창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위 환경이나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것이고, 주님께서 그 선택안에서 의미를 발견하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님의 이름을 간절히 불러 봅시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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