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선필공소 (1850-현재)
주소: 울주군 두서면 상선필길 212-4
상선필공소(上善弼公所)는 경주시 내남면과 경계를 이루는 백운산 자락에 자리 잡은 울주군 인보성당에 속한 천주교 공소이다. 상선필은 공소 설립 이전에 탑곡 공소에 속한 지역이었다. 이만채가 편집한 『벽위편(闢衛編)』에 “1801년 주문모(周文謨) 신부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강이문[세례명 미상]이 언양으로 귀양 감”이라고 나오는데, 그 귀양지가 울주군 탑곡인 것으로 추정된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 강이문이 전교한 경주 예씨(慶州芮氏)[본명 미상]가 친족 5세대와 함께 상선필로 옮겨 와서 1805년부터 예씨 일가의 교우촌을 형성하였다. 그래서 한때는 ‘예씨네골’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1815년 을해박해, 1839년 기해박해 때는 충청도와 경상북도 지방에서 피난 온 김씨, 이씨, 최씨 등이 예씨 일가와 같이 신앙공동체를 이루면서 1850년경 상선필공소가 설립되었다.
공소는 설립 초기부터 많은 전교 신부가 거쳐 갔다. 공소 설립 이전인 1839년에는 샤스탕(1803~1839, 야고보) 신부가 전교하였고, 1845~1849년에는 다블뤼(1818~1866, 안토니오) 주교가 성사를 주었다. 리델(1830-1884) 신부도 이곳을 방문하였다. 이후 1850년경 최양업(1821-1861, 토마스) 신부가 경상도 지방으로 전교를 시작하면서 상선필에서도 사목하였다. 박해시기 후에는 로베르 신부, 죠조 신부 등이 상선필을 방문하였다.
처음 상선필필공소 건물은 뒤테르트르(1866~1904, 레오) 신부가 거처하던 집이었다. 당시 커다란 안채가 셋이요, 넓은 뜰과 대나무밭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두 번째 공소 건물은 1917년에 개축하였는데 당시 금액 60원과 신자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이 공소 건물은 6.25 전쟁 때 북한군의 방화로 전소되었고, 이후 현재의 공소는 1957년에 재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 강이문이 전교한 경주 예씨(慶州芮氏)[본명 미상]가 친족 5세대와 함께 상선필로 옮겨 와서 1805년부터 예씨 일가의 교우촌을 형성하였다. 그래서 한때는 ‘예씨네골’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1815년 을해박해, 1839년 기해박해 때는 충청도와 경상북도 지방에서 피난 온 김씨, 이씨, 최씨 등이 예씨 일가와 같이 신앙공동체를 이루면서 1850년경 상선필공소가 설립되었다.
공소는 설립 초기부터 많은 전교 신부가 거쳐 갔다. 공소 설립 이전인 1839년에는 샤스탕(1803~1839, 야고보) 신부가 전교하였고, 1845~1849년에는 다블뤼(1818~1866, 안토니오) 주교가 성사를 주었다. 리델(1830-1884) 신부도 이곳을 방문하였다. 이후 1850년경 최양업(1821-1861, 토마스) 신부가 경상도 지방으로 전교를 시작하면서 상선필에서도 사목하였다. 박해시기 후에는 로베르 신부, 죠조 신부 등이 상선필을 방문하였다.
처음 상선필필공소 건물은 뒤테르트르(1866~1904, 레오) 신부가 거처하던 집이었다. 당시 커다란 안채가 셋이요, 넓은 뜰과 대나무밭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두 번째 공소 건물은 1917년에 개축하였는데 당시 금액 60원과 신자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이 공소 건물은 6.25 전쟁 때 북한군의 방화로 전소되었고, 이후 현재의 공소는 1957년에 재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