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들의 복음화 주일미사(나해, 2024년 10월 20일)강론
오늘은 모든 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전교주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창설하신 이후 초기 사도들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수많은 선교사들이 세상 복음화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외국의 선교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적을 통해 신앙을 발견하고 스스로 중국으로 건너가 세례를 받아 신앙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자발적인 교회창설 이후 240년이 지났으며 복음화율은 전국민의 10%정도입니다.
지난 1984년 교황 방한과 103위 시성식 이후 한국교회는 폭발적인 신자 및 성소자의 증가를 보였지만 다양한 기술 문명의 발달과 세속문화에 젖거나 특히 코로나 감염병 만연과 같은 반복음적 현상들로 인해 오늘날 신자율이 감소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의 마태오 복음을 비롯해서 4복음서의 마지막마다 그리스도인의 지상사명으로 명하신 복음선포에 대한 실천을 오늘날 우리 한국의 천주교 신자들은 어떻게 실현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의 마태오 복음을 비롯해서 4복음서의 마지막마다 그리스도인의 지상사명으로 명하신 복음선포에 대한 실천을 오늘날 우리 한국의 천주교 신자들은 어떻게 실현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
선교에 대한 무관심, 신앙교육에 대한 부족 그리고 자신의 신앙관에 대한 확고한 의지의 결여도 문제이겠지만 복음선포를 마치 협박처럼 강요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제가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앞 봉고차에 시뻘건 십자가가 걸려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섬뜩한 글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한때에는 만 원권이나 천 원권 지폐에서도 그런 글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선포하라고 했는데 그 제자들은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협박을 일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최근 극성을 부리는 신천지 교회는 선교대상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을 추수할 대상으로 삼고 기존 교회에 비밀리 침투해 들어와 신자들을 포섭해가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지난 바자회 날에도 저희 본당 지하 강당에 신천지 교인들이 편지를 두고 가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선포하라고 했는데 그 제자들은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협박을 일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최근 극성을 부리는 신천지 교회는 선교대상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을 추수할 대상으로 삼고 기존 교회에 비밀리 침투해 들어와 신자들을 포섭해가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지난 바자회 날에도 저희 본당 지하 강당에 신천지 교인들이 편지를 두고 가기도 했습니다.
복음선포는 목적이요 교세 확장은 그 결과일 뿐인데, 결과에 얽매여 복음선포의 의미를 잃어버린다면 이는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한때 우리 가톨릭교회도 적지 않은 본당에서 ‘가두선교단’을 만들어 거리로 아파트 단지로 허리에 띠를 매고 나가곤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두고 교세의 확장이라는 면보다는 선교를 나가는 당사자의 의식전환을 가져다준다는 긍정적인 면이 더 크겠지만 이제는 가톨릭도 저렇게 나서는구나 하는 세상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참된 복음화란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가난, 질병, 기아, 무지와 같은 묶인 세상에서 해방을 약속하는 삶을 증거로서 살아내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딛고 있는 위치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고, 왜 저 이는 남다르게 볼수록 편하게 느껴질까? 왜 저 사람은 매사에 솔선수범하고, 남들이 하기 꺼려하는 일을 기쁘게 행할까? 라는 평가를 받도록 생활할 때 진정한 복음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대인과의 만남을 통한 구체적인 선교의 경우는 선교주체에 대한 확고한 인식도 중요한 요소일 것입니다. 즉 내가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서 선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가르치라고 명하신 후에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께서 선교의 주체가 되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용기를 지니게 해줄 것입니다.
오늘날 또 하나의 선교에 대한 중요한 내용은 소위 재복음화로 불리는 냉담자들에 대한 회두 문제입니다. 열심히 선교해서 입교한 신영세자가 3년 내로 냉담하는 사람들이 50%를 넘을 정도라고 하니 우리 교회의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교구 본당 중심으로 교회가 구성되어있는 우리 한국교회 모습에서는 본당의 지역사회에 대한 문화적 기능도 중요한 선교의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연도회의 기도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적지 않은 공간을 지니고 있는 본당이 그 지역민들을 위한 여러 가지 자선사업이나 문화사업을 통해서 2차 바티칸공의회가 표명한 세상 안의 교회라는 취지에도 부합하는 선교사업도 미래의 교회가 해나가야 할 중요한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선교란 말은 영어로 mission 즉 파견이라는 뜻임을 감안할 때 초대교회의 사도들만이 파견된 자들이 아니라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으로부터 복음선포의 사명을 위하여 파견된 자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매 미사 후에 주님으로부터 파견되는 우리 신자들은 회개와 증거의 삶을 통해 쇄신되고 선교사명에도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