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오늘은 전교주일이고, 교회는 모든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미사를 봉헌합니다.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주님의 복음이 전해지고, 모든 이들이 복음을 기쁨을 누리도록 함께 기도하며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
“복음”이라는 말 자체는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음을 선포하셨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치유와 용서가 넘치고, 하느님의 생명으로 채워진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이 우리 가운데 있음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바로 복음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복음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을 가져다주는 기쁘고도 복된 소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복음을 기쁨으로 여기기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지나치게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문화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문화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외부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만 충족시키고자 합니다. 물론 인간의 기본적 필요는 채워져야 하지만, 문제는 인간의 욕망은 한계가 없다는 점입니다. 맛있는 음식도 그러하고, 재물도 마찬가지이며 성적인 욕망도 그러합니다. 이러한 욕망은 결핍이 충족되었다고 멈추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욕망은 한계를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이러한 즉각적이고 외부적이고 물질적인 문화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 안에서 서서히 그러나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기쁨을 쉽게 찾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 겪고 있는 가장 큰 불행이자 위험입니다.
그럼에도, 복음은 기쁨입니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들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 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실망과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기쁨이 끊임없이 샘솟게 됩니다. 이런 기쁨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고 또한 수행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이 사람을 사로잡으시고 그 사람 안에서 살아 계시며 일하신다는 것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인내와 수행이 필요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복음의 기쁨은 우리의 삶을 바꾸어 줍니다. 이제까지 살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바라보고 체험하게 해줍니다. 복음의 기쁨은 삶을 새롭게 살 수 있게 해줍니다.
복음의 기쁨은 잠깐의 기쁨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세상에 실망하고 사람에 실망한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새로운 힘을 줍니다. 인생에서 실패하거나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힘을 줍니다. 험한 세상을 나름의 방식대로 꿋꿋하게 살아갈 용기라는 힘을 줍니다.
복음의 기쁨을 체험한 이들은 세상에 자신이 체험한 기쁨을 선포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이들이 주님의 부활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언하고, 다락방에서 숨어있던 사도들이 세상 바깥으로 나가서 복음의 기쁨을 자기 목숨을 바쳐가며 전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으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하고 말합니다. 또한 오늘 독서에서도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하고 외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우리의 삶을 바꾸어 주고, 우리의 삶에 힘을 더해 줍니다. 그래서 이 기쁨을 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오늘 전교주일에, 복음의 기쁨이 먼저 우리 모두의 마음에 가득해지기를 기도합시다. 또한 복음의 기쁨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전해지고, 모든 이들이 복음의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청하며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