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28주일 강론)

 

부족한 것 한 가지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계명은 사회와 가정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 당연히 지켜야 할 십계명뿐만 아니라 사랑의 이중 계명, 곧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부자 청년은 십계명을 잘 지켜온 사람이었습니다. 본인은 십계명 준수를 통해서 스스로 의인임을 자처했겠지요. 그러나 그는 곧 울상이 되어 주님 곁을 떠납니다. 한 가지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자 청년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한 한 가지는 재물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그는 하느님 사랑이 곧 이웃사랑으로 이어져야 함을 알고 있었지만, 그 방법으로 자신의 소중한 재산을 포기하는 것까지는 실천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는 입으로 주님을 흠숭한다고 했지만, 그리고 율법을 지킴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했지만 실제로는 하느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했습니다. 재물은 잠세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도구이지만, 부자 청년은 영원히 소유해야 할 인생의 목표로 삼은 것이었습니다. 사실 부자 청년은 이웃도 하느님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내린 최종 결론은 주님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은 양자 결단을 촉구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자신이 가장 아끼는 그 무엇인가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포기할 것인가? 주님의 말씀에는 양다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자 청년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한 한 가지는 재물에 대한 집착이었다면 여러분에게는 그 결정적으로 부족한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지금 나에게 요구하시는, 그러나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애착은 무엇입니까?

 

애착을 버리지 않는 이상 우리는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특히나 집착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을 끊어버리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100억 자산가가 1억을 기부하는 것과 10억 자산가가 천 만원을 기부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쉽겠습니까? 같은 비율이라도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포기하는 체감온도는 다릅니다. 우리는 가난한 과부의 렙톤 두 닢을 기억합니다. 그녀는 전 재산을 헌금했지만 아깝지 않았습니다. 재물이 많으면 포기하기도 힘듭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여기서 바늘귀는 작고 좁은 성문의 이름입니다. 우리로 치면 개구멍혹은 쪽문정도가 되겠습니다. 예루살렘 성문은 보통 해가 떨어지면 통행을 차단하기 위해서 닫습니다. 그러나 야간에는 사람 한 명 정도는 통과할 수 있도록 바늘귀라는 작은 비상문을 열어 둡니다. 실제로 덩치가 큰 낙타가 그 문을 통과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렵사리 통과하기 위해서는 비교적 덩치가 작은 낙타가 머리를 숙이고 몸을 굽혀 통과해야 합니다. 당연히 짐을 달고 있으면 불가능합니다. 낙타로 비유되는 부자가 바늘귀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재산의 덩치를 줄이지도 못할뿐더러 돈이 되는 짐을 버리는 것이 아깝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문은 항상 좁은 문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체중을 줄이지 못하고 옷은 두껍게 껴입으며 손에는 쇼핑백을 여러 개를 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복음은 희망적인 메시지로 끝납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성경에는 울상이 되어 떠난 부자 청년도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재산을 팔아 나눠 준 세관장 자캐오도 있습니다. 자캐오는 키는 작았지만 주님을 만나고 나서 영적으로 키가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자캐오는 부자였지만 주님을 만나고 나서 큰 자선가가 되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진정 부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동의만 하고 협조하기만 하면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가능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교회사를 보면 많은 죄인들이 성인이 되었습니다. 많은 비겁자들이 순교자들이 되었습니다. 또 많은 구두쇠들이 기부천사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결단입니다. 부자 청년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 한 가지는 재물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데, 그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믿음은 결단을 전제로 합니다. 영원한 생명 앞에서 그 어떠한 것에도 절대적인 가치를 두지 않는 우리의 초연함과 하느님 나라를 위해 버리고 떠남은 진정한 믿음의 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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