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간 레지오 마리애 훈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만들어주자, 아담이 아주 마음에 들어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창세2,23)하며 끔찍이 사랑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물었습니다. “하느님, 어떻게 제 아내를 저렇게 아름답게 만드셨습니까?” 그러자 하느님께서 “그래야 네가 사랑할 것 아니냐?”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아담이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리 착하게 만드셨습니까?”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그래야 네가 아껴줄 것이 아니냐!”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가만히 보면 쟤가 좀 맹한 데가 있습니다. 그건 어떻게 된 것입니까?”하고 아담이 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쟤가 너 같은 애를 사랑할 거 아니냐?”
하느님께서 창조의 시작부터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것은, 각각 나름대로 아름답고 독특한 개성이 있지만 자기 혼자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이 있고, 반드시 상대방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 났어도 모자라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따라서 남녀의 관계는 욕심을 채우기 위한 소유와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줘야 할 동반자입니다. 그래서 “부부간의 모든 불행은 신에게만 있는 완벽함을 인간에게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하긴 신혼 초에는 상대방을 GOD(하느님)으로 보면서 존중과 사랑을 표하다가, 어느 순간에, 이 알파벳이 뒤집히면서 거꾸로 DOG(개)로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쩌면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한 것은 아니겠습니까?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만을 가까이하고, 그렇지 않다면 과감하게 그 인간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아니었습니까? 사실 우리 인간은 그 나약함과 부족함으로 인해서 이를 채워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기준을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기준에서 찾다 보면 내가 만나는 사람을 제대로 알 수도 없으며 가까이할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무게, 똑같은 권리, 똑같은 의무를 지니며 서로 존경하고 사랑받아야 할 고유한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부족함을 탓하기보다 서로 나를 위한 맹한 것에 감사해며, 서로를 믿고 존중하며 사랑하는 아름다운 한 주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