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24주일 강론)

 

반석의 또 다른 이름, 사탄

 

우리 안에는 두 가지 인격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교회가 바로 설 수 있도록 떠받치고 있는 베드로, 곧 반석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교회를 망가뜨리는 장애물, 곧 사탄입니다. 교회의 초석은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은 단순히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가 아니라, 실제 하느님의 말씀 그 자체이시며 근원적으로는 하느님과 같은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신분과 어울리지 않는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십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대표하는 사도단은 갈립니다. 반석이 될 것인가 사탄이 될 것인가? 어쩌면 베드로는 입술로는 신앙을 고백했지만, 몸은 그 신앙을 부정하는 이중적인 신앙인의 전형을 대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제2독서 야고보서의 말씀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 17) 많은 이들이 신앙을 입술로만 고백합니다. 열심히 묵주기도를 바치며 매주 미사를 드리고 있지만, 가정과 본당, 그리고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정 딴판입니다. 가정에서는 가족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독재자이며, 본당에서는 말만 앞세우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뺀질이이며, 사회에서는 사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자입니다. 사실 그들은 미안한 말씀이지만 무늬만 신자일 뿐 선량한 세인보다 못한 사람입니다.

 

신앙고백의 핵심은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부정하는 신앙은 거짓이고 위선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를 지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할까요? 첫째,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남의 말도 잘 듣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 안에 분열과 오해가 생기는 것은 자신을 내려놓고 남의 말을 마음으로 잘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른말 한답시고 꼭 상처 주는 말을 하고, 그 결과 공동체에 균열이 생기고 조직이 와해되기도 합니다. 본당 봉사자의 역할 분담에 따른 직위가 다른 것은 공동체의 선익을 효율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대원칙이 있으니 조직이 우선이 아니라 사람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 간의 경청, 소통, 이해, 양보, 용서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조직은 효율성을 추구하지만 그 조직을 이루고 있는 인간은 관계 속에서 위로와 격려를 받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입장과 이해관계, 그리고 자신의 자존심이 우선이 되면 꼭 문제가 발생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의 목적은 성공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둘째,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죽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만심, 욕심, 경쟁심, 공명심, 고집, 편견, 선입견, 교만을 죽이는 것입니다.

 

셋째,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희생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희생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공동선을 위해서 자신을 버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무감이나 영웅심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받은 은총에 감사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거저 받았으니 거저 돌려주어야 합니다.

 

끝으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끝까지 따른 한 의사 선생님 이야기를 들려드리며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남수단에 이태석(1962~2010) 신부가 있었다면 영등포역 쪽방촌엔 선우경식(1945~2008) 원장이 있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행려병자, 노숙인, 쪽방촌 주민 등을 헌신적으로 돌보다 63세의 아까운 나이에 암투병 중 뇌출혈로 선종(善終)한 요셉의원 선우경식 원장의 전기 의사 선우경식’(위즈덤하우스)이 출간됐다. 의료 공백 와중에 출간된 영등포 슈바이처이야기는 세인들에게까지 많은 귀감이 되고 있다. 설립 이후 지금까지 21년간 요셉의원이 돌본 환자는 연인원 75만명이다. 요셉의원은 영리추구가 목적이 아닌 극빈층을 위한 자선의료기관이다.”

 

그러나 그분의 이러한 이타적인 삶 이면에 솔직한 신앙고백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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