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추석미사(나해, 2024년 9월 17일)강론
하늘은 높고 곡식과 과일들이 익어가는 결실의 계절에 우리는 한가위 추석을 맞이하여 합동위령미사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민족 고유의 명절인 한가위에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한 해 동안 땀 흘려 수확한 햇곡식과 햇과일로 차례를 드리고 성묘를 합니다. 또한 오늘 우리가 드리는 합동위령미사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과 먼저 세상을 떠나신 조상들과 부모님 혹은 일가친척들을 기억하며 감사를 드리고 기쁨을 나누는 기억의 제사요 친교의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속에서 드리는 미풍양속으로서 ‘차례’ 혹은 ‘제사’가 자연적인 효도에서 기인한다면, 우리 교회의 위령미사는 어떠한 신학적 의미가 있는지 잠시 살펴봅시다.
우리 교회는 지난 1545년에 개최된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하였습니다. “연옥이 존재하고 여기에 갇혀있는 영혼들은 살아있는 신자들의 기도와 특히 미사성제로써 도움을 받을 수 있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교우들은 영옥영혼들을 위해 다 함께 모여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따라서 사도신경에 나오는 ‘모든 성인들의 통공’이란 말은 산 이와 죽은 이들이 서로 통교할 수 있다는 뜻으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지상 교회인 우리 모든 신앙인들은 연옥교회의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지만 개신교는 ‘연옥’ 개념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죽은 이들이 이미 천당이나 지옥에 가 있다고 판단하기에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으며 기도할 수도 없다는 점이 우리 가톨릭과 다른 점입니다.
오늘 화답송은 시편을 인용하여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66,6)라고 노래합니다. 한가위에 우리 신앙인이 마땅히 지녀야 할 자세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으로 창조하시고, 당신 백성들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벗어나 40년 동안 광야 여정에 함께 해주시며, 마침내 하느님 친히 사람이 되시어 우리를 구원해주신 그분의 사랑과 축복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명절에 우리는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를 기억하고 마음을 새롭게 하면서 우리를 낳아 하느님의 생명을 전해주신 조상들과 부모님들께도 감사드려야겠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마음을 열어 우리 집 담장 너머에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다가가, 가진 바를 기꺼이 나눔으로써 모두가 삶의 의미를 찾는 기쁨의 축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에는 어리석은 부자가 나옵니다. 이 부자는 어느 때보다 많은 소출을 거두자,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풍성한 은총은 깨닫지 못하고, 온통 자신의 재산에 온 마음이 가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재물과 욕심으로 가득 차 있으니, 하느님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드리고 있는 이 한가위 추석미사도 한 해의 수확에 감사드리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수확과 재물을 주신 하느님을 망각하고 오직 자신의 현세적 소유에만 집착한다면 오늘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와 다름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5) 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이제 오늘 한가위를 맞이하며 저는 여러분들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세 종류의 고향(故鄕)을 묵상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떻게 고향이 세 개나 되나?’하고 놀라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세 고향이란 이렇습니다.
첫 번째, 육신의 고향입니다. 즉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이곳은 마음의 편안함과 추억들이 생각나는 곳입니다.
두 번째는 신앙의 고향입니다. 즉 내가 세례를 받고 하느님을 알게 된 곳으로, 하느님을 알려고 교리를 배우고 기도하며 위로를 받았던 성당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영원한 고향, 즉 우리 신앙 선조들이 불렀던 본고향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느님께로 돌아갑니다. 그곳은 우리 선조가 가셨고 내가 죽은 후에 가야 할 영원한 궁극적인 고향입니다. 하느님이 계신 그곳, 우리의 후손들이 앞으로 나와 만날 그곳이 본고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고향을 믿고 희망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 한가위 명절을 맞으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회상하며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생명을 전해준 조상들께도 감사드리며, 친교와 나눔을 통하여 하느님의 기쁨을 모두가 누렸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이 기억의 제사요 친교의 시간을 통해 여러분 모든 가정에 주님의 더 크신 은총이 충만히 내리시길 희망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