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간 레지오 마리애 훈화
어느 글에서 북어와 황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황태나 북어나 똑같이 명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구분은 말리는 장소에 따라 결정됩니다. 강원도 용평 등 바람과 폭설이라는 악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일교차가 매우 큰 곳에서 명태는 낮에는 녹고 밤에는 얼고를 스무 번 이상 반복해서 말리면, 명태의 빛이 누렇고 살이 연하고 부드러우며 쫄깃한 육질을 내는 황태가 됩니다. 하지만 명태를 바닷가에서 그냥 말리면 마른 장작처럼 딱딱한 북어가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혹독한 시련기를 겪은 것들이 당도도 높고 맛도 아주 좋았습니다. 해풍을 맞고 자란 포도가 훨씬 맛있습니다. 또한 하우스 배추보다는 해남 지역에서 한겨울에 재배한 ‘월동 배추’가 더 맛있다고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련과 고통을 이겨낸 사람이 다른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습니다. 매스컴을 통해서도 보도되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 시련과 고통을 이겨서 영광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시련이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시련을 거치지 않으면 무엇 하나 훌륭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결국 시련과 고통은 주님의 뜻이 담긴 또 다른 선물입니다. 그래서 이 시련과 고통을 무조건 피하려고 한다면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이 될 것입니다. 바로 그런 차원에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는 말씀이 이해됩니다. 바로 베드로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하느님의 관점이 아니라, 사람의 관점으로만 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못하여 고통과 시련에 대해서 불평과 원망만 던졌던 우리들이 아닙니까? 하느님의 일을 위해서는 사람의 일 너머의 것을 볼 수 있는 올바른 식별력과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용기를 주님께서 주시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다른 이들을 돕고 믿음과 기도가 실천으로 이어져 하느님의 영광에 초대받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참 신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