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일(나해, 2024년 9월 15일)강론
‘딜레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처지를 말하기도 하고,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을 말하기도 합니다. 생명은 스스로 발전하고, 종족을 보존하도록 진화해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생명이 스스로를 망치는 행동을 한다면 이것도 딜레마입니다. 오늘날 ‘게임 중독, 알콜 중독, 도박 중독’으로 많은 사람들이 몸과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마약 중독자들도 증가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바오로 사도도 자신의 이런 약점을 고백하였습니다. ‘내 안에는 거짓된 또 다른 자아가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고, 복음을 전하고, 영원한 생명에로 가고 싶은데 거짓된 자아는 나를 또다시 어둠의 구렁으로 밀어트리려고 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처럼 초대교회의 위대한 성인도 한때 ‘딜레마’에 빠졌던 자신의 상황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자주 ‘딜레마’에 빠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세례를 받았지만,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비율은 30%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70%의 신자들은 거짓된 자아에게 자신의 의지를 빼앗기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지만 우리의 말과 행동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나의 것을 먼저 챙기려 하고, 남을 속이려 하고, 세속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제자들을 ‘딜레마’에 빠지게 하곤 합니다. 당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며 많은 표징과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시기도 했지만, 어떤 말씀들은 제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도 하셨습니다. 즉 스승 예수님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이해하기 힘든 말씀들로 인해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 곁을 떠나갔다고 성경은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일컫는지 물어보십니다. 그리고 잠잠해지기를 기다려 예수께서 다시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며 제자들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십니다.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그 마음 안에 당신께서 머무실 자리가 있는지 직접 물어보십니다.
사람들은 재난을 당할 때, ‘하느님은 매정하시고 침묵하시는 분’이라고 원망을 표현하기도 하고 ‘징벌의 하느님’이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반면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하느님은 자비로우시며 사랑이 넘치신 분’이라고 찬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스스로가 대답해 볼 차례입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소금인형’이라는 시에서 바다를 알고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가다 완전히 녹아버려 자신의 존재가 바다와 하나가 된 소금인형처럼, 우리도 누군가를 알려면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녹아내리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예수께서도 우리를 아시기 위해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질문에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하였지만, 예수께서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시자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다 ‘사탄아 물러가라’는 충격적인 꾸지람을 듣고 있습니다. 스승 예수를 영광과 임금이신 분으로만 생각했던 것이죠.
우리가 참으로 주님을 알기 위해서는 고통을 당할 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대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의 그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경우를 경험하고 속이 상하게 됩니다. 같은 논리로 건성으로 자신을 대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 모습들이 바로 자신이 지금까지 예수님께 해 왔던 모습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9월 순교자 성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순교자들은 하느님을 올바로 이해하고 자신들의 사랑과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준 참된 신앙인입니다. 우리가 순교자 성월을 지내는 것은 믿음을 행동으로 증거하신 순교자들의 삶을 본받기 위해서입니다.
과거 박해시대, 신앙을 포기하도록 온갖 고문과 회유 마침내 다양한 방법으로 죽이기까지 하면서 박해를 가했지만 오늘날은 그런 물리적인 박해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대에도 우리를 신앙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많은 요소의 현대적인 박해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 이상한 교리로 신앙인들을 현혹하는 사이비 종교들, 그리스도교의 윤리에 역행하는 수많은 행위들, 그리고 우리 내면에서 도사리고 있는 시기, 불목, 열등의식, 교만, 무관심 같은 박해요소들이 과거보다 더 다양한 색깔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와 같은 수많은 현대의 박해요소들로 포위되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신앙을 지켜가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버리게 하는 그 어떤 박해요인들도 극복해 내고, 내 신앙을 먼저 앞에 두며 주일미사 참례와 기도 생활, 사랑의 실천 등을 통해 내 신앙을 지켜나갈 수 있다면 그는 이미 훌륭한 현대적 의미의 순교자일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9월 순교성월을 보내며 목이 잘리고 피를 흘리는 순교만이 아니라, 주님을 더 알기 위해 여러분 자신이 극복해야 할 현대적 의미의 순교에 대해서도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번 한가위 추석에 만나는 이들에도 순교정신으로 그들을 대하고 배려하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