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4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by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posted Sep 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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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4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오늘 복음은 예수의 하루 일과를 소개한다. 가파르나움에 있던 한 회당에 들렸던 예수께서는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서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신다. 저녁에는 갖가지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을 고쳐 주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신다. 다음 날 새벽에는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외딴 곳으로 가서 기도하신다. 그리고 다른 동네를 향해 길을 떠나신다. 갈릴래아에서 활동하시는 예수님의 하루 모습이다.
 
오늘 복음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라는 분은 하느님의 아들이니까, 초능력을 지니고 원하는 대로 기적을 행하셨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오늘 복음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기적이 하느님의 일을 입증하지 않는다. 기적을 보았기 때문에 신앙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라는 분을 사람이 되신 하느님, 하느님의 아들이라 믿는 신앙인은 예수께서 하신 일들과 말씀들에 주목하되, 그 일 안에서, 그 말씀 안에서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듣는다. 오늘 복음에서도, 기적이냐 아니냐를 제쳐두고, 예수께서 하신 일 안에서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들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시몬의 장모를 고쳐 주고 사람들이 데려온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그리고 마귀 들린 사람들에서 마귀를 쫓으셨다. 예수께서 하신 이런 일들 안에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 듣고, 알아 보아야 한다. 곧, 하느님은 사람들을 고치고 살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예수시대 당시, 백성의 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하느님이 주신 벌이라고 가르쳤다. 인간은 그 불행을 감수하면서 자기의 죄 값을 치러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런 가르침을 거부하셨다. 하느님은 자비하신 아버지라고 가르치셨다. 인간이 겪는 불행의 원인을 하느님에게 두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이 세상에는 각종 불행이 존재한다. 예수께서는 그런 불행을 하느님과 관련 지어 생각하지 않으신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 각종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아 간다. 그리고 그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극복해 가면서 성숙하고 내공도 쌓아 간다. 온갖 힘듦과 고통을 겪으면서 사람이라는 탈을 쓴 동물은 비로소 사람이 되어간다.

사실, 고통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하느님 믿는다고, 그 믿는 사람이 고통에서 면제되지도 않는다. 하느님은 우리가 아쉬울 때 언제라도 불러서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심부름 센터 직원이 아니다. 성경은 모든 고통의 원인을 인간의 자유의 남용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자업자득인 셈으로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고통의 원인이 인간의 자유의 남용이니까, 그 책임은 온전히 인간만이 져야 한다고 여기고, 나 몰라라 하시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철저한 인과응보의 논리로 세상을 다스리시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고통을 함께 하려고, 그 고통에서 참으로 해방되는 길을 알려주시려고,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보내셨고,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고, 성령을 보내셨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신앙인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길을 배우며, 그분과 함께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예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일을 실천하셨듯이,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여 아버지의 자녀 되어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신앙인이다.

예수께서 병을 고치고 마귀를 쫓으셨다는 말은 그 시대 가장 불행한 사람들을 그 불행에서 건지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 주셨다는 뜻이다. 우리도 오늘 우리 주변의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행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

여러 가지 어려움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참 많다.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신앙인들끼리, 우리끼리만 모여서, 우리끼리만 행복하면 다 된 것이 아니다. 우리끼리 행복한 그만큼 우리 주변의 불행한 생명들에게도 시선이 가야 한다. 그들도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 그리스도 신앙의 근본이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쪼잔한 밴댕이 속아지로 살지 말라 채근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