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8일 목요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미사 강론

by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posted Sep 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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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8일 목요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 장면은 분명, 사랑 싸움의 한 장면이다.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꾸짖으면서, ‘맨 처음’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혹은 누구를 위해 서로 만났는지를 상기시킨다. « 우리가 하느님 일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만나 사는 것이지, 사람 일을 하기 위해서 이러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라고 말이다.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 싸울 때도 있고, 그러다 보면, 둘 다 똥통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도 있다. 그럴 때에, ‘맨 처음’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혹은 누구를 위해 서로 만났는지를 상기하고, ‘맨 처음’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면, 그 싸움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부들은 이러한 노력을 일생 동안 한결같이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몇 번 시도하다가 상대방에게서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때부터는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식의 삶을 살아가거나, 그 삶에도 이력이 나고, 그 삶을 도저히 견디지 못할 때에, ‘이혼’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꺼내게 되는 부부들이 부지기수이다.

베드로를 꾸짖었던 예수님은 결코 베드로를 미워하지 않았다. 3번이나 스승을 모른다고 말하며, 스승을 배신했던 베드로를 위해서 ‘괜찮다’고 빙긋이 미소까지 지어 보이셨다. 스스로 죄인이라고 여겨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뵈옵기가 너무나도 부끄러워 고기 잡던 배에서 얼른 뛰어 내려서 물 속으로 자신을 숨기던 베드로를 불러서 함께 아침을 나누고, «베드로, 당신은 나를 사랑합니까 ? »라고 세 번이나 물으면서, 그 때마다 « 내 양들을 잘 돌보라 »라는 부탁까지도 했던 예수님이었다. « 당신은 나를 누구라고 합니까 ? »라는 물음에 대한 베드로의 고백 «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에 언제나 충실하셨던 예수였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그 고백을 베드로의 사랑 고백으로 여기셨음에 틀림 없다. 나를 사랑하는 저이가 나를 하느님의 아들로, 그리스도로 고백하는데, 내가 그러한 삶을 살아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 하며, 사랑하는 제자에게 스승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다 보여주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다.

오늘 복음은 우리들에게 사랑하는 이들 간의 고백이 얼마나 큰 일을 해낼 수 있는지를 생각케 한다. 그 고백에 충실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요, 사랑의 길이요, 아픔의 길이지만, 또한 동시에 부활의 길임을 넌지시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혼인서약을 하면서 부부가 된 이들이 서로에게 일생 동안 충실하려고 애를 쓰고, 몸부림을 치면, 바로 그 애씀과 몸부림침이 십자가의 길이요, 사랑의 길이요, 아픔의 길이지만, 동시에 부활의 길임을 오늘 복음은 우리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들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아들이 걸어간 길을 함께 걸어가보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 바로 교회이다. 교회는 사랑하는 배우자에게만 사랑 고백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배우자가 태어나서 살아온 세상, 배우자와 함께 열매를 맺은 자녀들이 태어나 살아갈 세상에까지도 사랑 고백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지금 그 세상 곳곳이 많이 아프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에 그를 위해 그저 기도만 하지는 않는다. 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고, 그에게 약을 먹이고, 그에게 적절한 치료를 받게 한다. 그러면서 그를 위해 기도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죽어가는 이 나라 이 땅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알아서 하겠지’하는 생각에 뒷짐지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는 나 역시 세상을 따라서 아프고 병이 날 것이다. 베드로를 따라서 나자렛 사람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우리들이라면, 그 예수가 세상을 어떻게 치열하게 사랑하려고 했는지를 보고 배우는 동시에, 그를 따라 그렇게 눈물 나는 이 세상을 끌어 안아야 한다.

이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