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일(나해, 2024년 9월 8일)강론
오늘 복음에서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께서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쳐주시면서 귀도 열리고 말도 할 수 있도록 하는 기적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제가 부산신학교 교수로 재임했던 약 4년 동안 부산 초량에 있는 맹인선교회에 매월 첫 주일미사를 담당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으니 목소리가 발달했습니다. 미사 때 부르던 성가는 어떤 공동체보다 우렁차고 신나게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비록 대부분의 맹인들이 팔다리에 멍자국이 없는 분이 없을 정도로 작고 큰 상처들이 있었지만, 주일미사 때는 정말 기쁘게 주님을 찬양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눈을 뜬다.’라고 말할 때 단지 맹인이 인체의 시력이 보이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공부에 매진하던 사람이 ‘학문에 눈을 뜬다.’라는 표현도 있고, 이제 성년이 된 젊은이가 ‘이성에 눈을 뜬다.’라는 표현도 사용합니다.
이는 자신이 그동안 몰랐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는 ‘귀가 열린다.’라는 말도 같은 의미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볼 때 이 세상에는 육체적으로는 눈도 떠 있고 귀도 모두 잘 열려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눈멀고 귀먹은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돈에 눈멀고, 탐욕에 눈멀고, 자신의 교만에 눈멀고, 나이가 들면 또 명예에 눈이 머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 자신의 고집이나 이익에 사로잡혀 남의 충고나 조언에는 자신의 귀를 틀어막고 사는 정치인들, 한 가정에 살면서도 서로 이해를 하지 못해 가정불화를 일으키게 되는 귀먹고 눈먼 부부들이나 형제들이 그러하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이들에게 눈을 뜨게 하시고 귀를 열게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십니다. 단지 육신의 눈이나 귀가 아니라 그분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통해서 영혼의 눈과 귀를 열게 하시기 위해서 오십니다. 그것도 당신의 동포인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방인들을 포함하여 온 세상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말씀을 들으려 하는 사람은 누구나 올바로 고쳐주기 위해 오십니다.
그리고 병자들을 고쳐주신 후에는 그 기적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이는 예수께서 오직 그 병자의 육신을 치유함으로써 기적의 능력을 자랑하고 보이기 위하여 행한 것이 아니라 병자들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려 하느님 나라에로 초대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귀머거리는 없으며, 보려 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맹인은 없습니다. 한 예화가 생각납니다.
어떤 오래된 본당에 매일 저녁마다 성전에 와서 2시간 이상씩 기도를 바치는 80이 넘은 할아버지 교우 한 분이 계셨습니다. 젊은 본당신부는 매일 미사 전 30분도 안되게 성무일도를 바치는 것이 전부인데 성직자보다 훨씬 더 많은 기도를 바치시는 할아버지께 하루는 본당신부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매일 무슨 기도를 그렇게 정성껏 하세요? 혹시 할아버지의 기도 방법을 가르쳐 주시면 저도 좀 배우겠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이 늙은이가 무슨 기도를 할 줄 알겠습니까? 저는 그저 한 시간 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하느님도 제 기도를 듣고 계시고요.” 하고 대답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들음은 신앙의 첫째 조건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믿음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생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들으려고 하는 마음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그분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데 우리는 기도한다고 하면 그저 자신의 요구사항이나 이야기만 늘어놓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방법은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방법과 성경을 읽음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방법이 있습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는 마음이 있을 때 대화가 됩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는 들어줄 생각이 조금도 없고 자신의 말만 들어달라고 한다면 대화는 단절되고 급기야 다툼으로 혹은 무관심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으시오!”라고 요란하게 외치는 것보다는 상대의 이야기를 먼저 들으려 할 때 더 큰 선교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말하기는 적게 하라고 입을 한 개만 주셨고 많이 들어라고 귀는 두 개를 주신 것 같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복음 말씀이나 묵상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시고 비추어주시는 것보다 더 큰 해방과 구원의 선물은 없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들으려 노력한다면 육신의 눈보다 신앙의 눈이 얼마나 더 많은 세계를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찾을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성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주님께서는 우리 신앙의 귀를 열라고 재촉하십니다. 이제 이 미사가 끝나고 파견되는 우리는 특히 다가오는 한가위 명절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눈과 귀를 열고 닫혀있는 이들을 위해 초대하는 마음으로 순교성월을 지냈으면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