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코복음 7,31-37
오늘 1독서 이사야예언서(35,4-7ㄴ)의 말씀 중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5)....는 구절은 지난 월요일에 읽은 복음 예수님께서 나자렛을 찾아가셔서 회당에서 읽으신 내용의 일부입니다.(루카4,18참조)
메시아는 바로 눈과 귀를 열어주고 가난하고 억눌린 이를 해방시키시는 분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과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주십니다.
".... 그에게 '에파타!'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34-35)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우리 믿음은 귀가 열려 기쁜소식을 듣고 선포하는 체험입니다.
이 믿음의 열림은 보통 한번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마지막 구원에 이르기까지 걸어가고, 나아가는 여정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우리 온 존재가 하느님을 향해 열려 구원되기 위해서는 먼저 닫혀있고 묶여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야할 것입니다.
감겨있는 줄 알아야, 묶여있는 줄 알아야 고침을 받고, 해방을 얻을텐데 나는 잘 보고 있다고, 내 것이 옳다고
귀를 막고 눈을 감고 마음을 닫고 살면 해방, 구원의 체험 거의 불가능합니다.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있다."(요한 9,41)
틀린 줄 알면서, 그렇게 하면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확실히 알면서 고집하지는 않습니다.(자존심 때문에 고집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빛두레에서 다음의 글귀를 읽었습니다.
"헬렌켈러는 눈멀고 귀먹었다. 그러나 눈멀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을 둘러싼 억압을 보고, 귀먹었기 때문에 분노한 인도주의의 함성을 들을 수 있었다."
이글을 읽으면서 '누가 볼줄 알고 들을 줄 아는가?' 자문해 볼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귀가 열리도록 치유받는 일입니다.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일입니다.
기도한다고 하면서 귀 기울일줄 모르고 이웃의 아픔에 마음 열줄 모른다면 병든 기도를 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에파타" 해주시기를 겸손되이 청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