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중미사 강론
2024.09.01 10:01

연중 제22주일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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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일 (나해, 2024년 9월 1일) 강론 

 
이제 시절도 9월의 첫날로서 가을의 절기에 들어서며, 우리 교회력으로는 순교자 성월을 지내게 됩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었던 순교선열을 묵상하며 우리의 신앙도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로 무장하고 교회를 떠나 냉담 중에 있는 이들이 하루속히 주님 품에 돌아오도록 꾸준히 기도합시다.
또한 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지난 2015년 공동의 집인 지구를 돌보는 것에 관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반포하시어 9월의 첫날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제정하시고 오늘날 파괴되어가는 생태계와 대자연을 소중하게 대하도록 강조하신 날이기도 합니다.(보편 지향 기도)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율법과 사람의 전통에 얽매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완고함에 대해 예수께서 참된 하느님의 계명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왜 당신들의 제자들은 조상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라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주의자들의 질문은 당시 가치 기준으로는 당연한 질문이었습니다.
 
복음의 무대가 되고 있는 팔레스티나는 서쪽에 지중해를 두고 북쪽, 남쪽, 동쪽 세 방향이 광야라 불리는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아주 건조하고 메마른 땅입니다. 따라서 바람이 불면 주변 사막의 먼지가 날아오기 마련이고, 자연스레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고, 단지나 놋그릇을 씻는 전통이 있었기에 따지기 좋아하는 그들은 이를 고집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참된 하느님의 계명은 보지 못하고 사람의 전통과 덧칠해진 율법에의 맹종만을 강조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음을 예수께서는 지적하고 계십니다. 원래 율법은 기원전 1250년경 하느님이 시나이산에서 모세와 계약을 맺는 사건에서 유래했습니다.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모세와 맺은 하느님의 계약이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을 생명으로 이끌어 주신다는 데 대한 믿음과 실천”으로 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에 수백 가지의 행동 지침이 덧칠해지고 그 모두가 율법처럼 변모하면서 오히려 사람을 얽어매는 멍에가 되어갔습니다. 
 
일탈된 형태는 다르지만 믿음과 실천에 대한 잘못된 모습은 오늘날에도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드리는 기도의 대부분은 자신들의 욕망을 성취하는 기복적인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시험합격, 사업성공, 직장에서의 승진 등 잘 살게 해달라, 병 낫게 해달라는 기복적인 요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개신교는 원래 프랑스에서 발생한 칼뱅주의의 프로테스탄트로서 소위 Presbyterian, 즉 장로교로 불리는 종파가 대부분입니다. 이들 교리에는 소위 운명론과 예정론을 강조하여 과정보다는 결과적으로 사람이 많은 돈을 벌고 잘 살게 되면 이는 하느님의 축복이요 가난하거나 비천하면 이는 하느님의 저주라는 계몽주의의 베이컨적 경제논리가 교리와 융합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과정이야 어떠하든 잘살고 많이 소유해야 주님으로부터 축복받은 사람으로 인정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 믿으면 부자 되고 건강해지고 평안해진다.”라는 서울 여의도 모 대형교회의 조 모 목사에 의한 ‘3박자 구원론’까지 등장하게 됩니다. 이 모두가 바로 사람의 전통이요, 참된 하느님의 계명과는 거리가 먼 내용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전통이 전형화되어버려 마치 율법과 같은 기능을 하게 되면 인간의 가치와 판단이 바로 하느님의 자리에 앉게 되는, 즉 주객이 전도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의 계명과 가치와 판단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말로써 많은 일을 합니다. 설득하고 위로하고 위협하고 강요하는 등 많은 일이 인간의 말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고받는 말은 빈말이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은 너의 생각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규정과 법규, 명령을 포함하여 하느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히브 4,12).
더욱이 하느님의 말씀은 변하지도 않고, 인간의 힘에 꺾이지도 않습니다. 그 말씀에는 지혜가 있고,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말씀으로 세상과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 말씀으로 계속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또한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본디 우리가 창조된 목적대로 완성되는 길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과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있는지를 비추어 볼 수 있도록 내 마음에 거울을 두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남들의 잘못된 부분만을 단죄하려는 위선의 삶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뜻인 사랑의 계명 실천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가을을 맞이하면서 자연은 뜨거운 여름을 이겨낸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우리 또한 신앙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험난한 내 삶에 ‘회개, 용서, 기도, 나눔, 겸손’의 거름을 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사랑, 희망, 믿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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