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20주일 강론)

 

성체성사의 신비

 

오늘 전례 독서 역시도 지난 3주에 이어서 생명의 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독서 잠언은 지혜를 빵과 술에 비유하고, 2독서 에페소서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가르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3독서 요한복음은 하느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양식과 음료가 당신의 살과 피임을 거듭 강조합니다. 또 성체성사의 의미를 강론해야 하는데요. 오늘은 먼저 제병의 질료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 보겠습니다. 제병의 질료는 밀가루입니다. 미사 중에 축성되는 제병은 방부제나 첨가물이 전혀 없는 오로지 유기농 우리 밀을 사용합니다. 지난 월요일 장례미사 전에 손 주교님께서 차담회를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요즘 밀가루 음식을 피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물론 당뇨병 환자들에게 밀가루 음식은 치명적이지만, 더 큰 문제는 수입산 밀가루로 만든 음식에 있다고 합니다. 오랜 기간의 유통과정에서 습기와 고온으로 인한 변질을 막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살충제와 방부제를 살포해야 하거든요. 밀가루 음식을 자주 먹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건강이 좋을 리 없겠지요. 재래식 화장실에 구더기가 끓고 있으면 뽀얀 밀가루를 뿌려 놓으면 다 죽는다 합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맛있는 음식들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사제가 미사 중에 제병과 제주를 축성하는 순간부터 단순한 빵과 포도주가 아니라 실재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됩니다. 이것을 성변화라고 하는데, 형상은 그대로 빵과 포도주를 유지하고 있지만 본질은 주님의 살과 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수난 전날 최후 만찬 때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면서 그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에 천주교 신자들은 그것을 하나의 상징이 아니라 실재라고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성체성사의 의미를 모르는 외교인들이 액면으로 이 말씀을 들으면 천주교 신자들은 혹시 식인종들인가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초대교회 시절에 성체와 성혈에 대한 전례 중의 말씀을 몰래 엿들은 외교인들이 천주교 신자들을 식인종으로 오해했다고 합니다. 성체와 성혈의 재료는 농부가 수확한 밀과 포도이며, 그것을 가공한 빵과 포도주는 그저 보통 사람들의 주식입니다. 그러나 미사 중에 축성된 빵과 포도주를 통해 실제로 주님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시고 우리와 일치를 이룬다고 믿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골고타 언덕에서 단 한 번 십자가 희생 제사를 바치신 것이 아니라 미사 때마다 우리를 위해서 다시 희생 제사를 바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체성사는 모든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당신의 제자들에 대한 스승의 극진한 사랑을 드러내는 표징이자 구원의 실재라고 보아야 합니다. 정말 사랑하면 그와 같은 처지가 되고 싶어 하고, 심지어는 그 사람을 위해서 대신 죽을 수 있습니다. 성체로 오시는 주님은 그렇게 죄로 오염되어 있고 또다시 죄를 짓는 나약한 우리를 위해서 지금도 당신의 생명을 다 내어놓으십니다. 그러니 자격 조건 없는 우리가 성체를 모신다는 것은 엄청난 특은이고, 말도 안 되게 송구한 일입니다. 사랑하면 그 사람의 부족함과 죄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습니다. 또 사랑하면 그 사람의 아픔과 슬픔까지도 짊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통해서 매번 그렇게 하십니다. 당신의 피로 나의 죄를 씻어주시며, 나의 피 맺힌 울부짖음과 몸부림치는 고통까지도 당신의 십자가로 안아 주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서 안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믿지 않으니, 내가 찾지 않으니, 내가 기도하지 않으니 그분을 몰라보는 것입니다. 그분은 성체성사로 나와 한 몸을 이루니 우리의 인생 여정에 있어 가장 가까이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고 고백하며, 우리 또한 주님과 한 몸을 이루도록 성체를 잘 모셔야 합니다.

 

저는 여느 아이들처럼 초등학교 3학년 때 첫영성체를 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체 안에 계시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예수님이 어떻게 이 작은 제병 속에 계시다는 것이지? 예수님은 마법사인가? 만화를 보면 요술을 걸어 사람이 개미가 되기도 하고, 숟가락이 되기도 하는데, 예수님은 빵으로 변신하신 것일까?” 처음으로 성체를 모시는 순간, 모든 것이 확실해 졌습니다. 성체를 입으로 받아 모시고 삼키고 난 다음, 갑자기 마음의 평화와 충만한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성적으로 따지지 않고 모든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어린이의 마음속에 예수님은 그렇게 처음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체를 통하여 제 안으로 들어오셨고, 저 또한 예수님 안에 머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룩한 그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우리들은 그래서 은총의 사람들입니다. 인간적으로 보자면 형편 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니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고 복된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주님의 은총을 충만히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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