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일(나해, 2024년 8월 11일)강론
오늘날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신자들의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병자 영성체 즉, 봉성체 숫자도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요즈음은 코로나 감염병 사태로 봉성체 숫자가 많이 줄었지만, 그 이전만 해도 어떤 본당 주임 신부님의 봉성체 때는 70-80명 정도가 되다 보니 손님 신부님을 불러서 서로 나누어 봉성체를 나가야 했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한 신부님이 봉성체를 나갔는데 치매 할머니였습니다. 집에 들어갔더니 그 할머니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밥 줘, 밥 줘!”만을 연신 외치고 계셨습니다. 가족들이 아무리 설득해도 꿈쩍도 안 하시던 할머니께서 신부님의, “성체 모셔야죠!”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손도 씻고 얼굴도 씻고 앉으셔서 성체를 정성스럽게 영하시고 그날은 멀쩡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봉성체를 매일 오셨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했다고 합니다.
육신의 밥을 달라고 할 때는 정신이 없다가도 영적인 밥을 먹을 때는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 영성체는 육신의 밥과는 차원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음식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육신은 흙으로 만들어져서 흙으로 돌아가고 흙에서 나는 것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의 영혼은 하늘에서 왔고 하늘로 돌아가며 그래서 하늘에서 나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노라면 지칠 때가 많습니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지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신의 상처와 절망 등으로 영혼과 마음이 지칠 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위로와 격려, 사랑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힘이시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주님의 몸이신 성체를 수없이 모셨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영적인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어떻게 성체를 모셨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성체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성체 앞에 선다는 것은 살아 계신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정성’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생략되었기에, 당연한 듯 모시는 영성체가 되었습니다. 구경하는 미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늘의 힘은 거저 오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예부터 성체 신심에는 정성이 실렸습니다. 교회가 ‘공복재’를 규정한 것도 지성으로 모시라는 의도입니다. 지금의 공복재는 성체 모시기 전 ‘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는 음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만 해도 성체를 모시려면 전날 밤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심지어 양칫물도 목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이 가르친 지나치게 엄격한 신심 행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성체께 정성을 드리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성체를 자주 모시면 ‘그분의 힘’은 강하게 활동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불안과 허무함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생명의 빵이 주는 ‘천상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라도 온몸으로 정성을 다해 성체를 모시면 이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나는 생명의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극한 정성으로 성체를 모시는 사람은 ‘이승과 저승’에서도 결코 헤매지 않게 됩니다.
가톨릭교회는 성체성사에 관한 수많은 성인들의 증거와 증언을 갖고 있습니다. 성녀 파우스티나(1905~1938)는 폴란드 수도자로서 33년간의 짧은 생애를 살면서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을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 성체 조배가 있었다…기도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갔을 때, 나는 영적으로 경당으로 옮겨졌고 거기에서 성광에 모셔져 있는 예수님을 뵈었다. 성광이 있는 자리에서 나는 주님의 영광스러운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네가 실제로 보고 있는 것을 이 영혼들은 신앙을 통해서 본다. 오, 그들의 위대한 신앙은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가! 겉으로 보기에는 내 안에 아무런 생명의 흔적이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모든 성체 하나하나 안에 생명이 완전하게 존재하고 있다. 내가 어느 영혼 안에서 활동할 수 있으려면 그 영혼이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살아있는 신앙이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가!”(성녀 파우스티나 수녀의 일기, 1420, 팔로티회)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화답송의 시편에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라고 초대합니다.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고자, 창조주시요 구세주로서의 엄위하심을 감추시고 성체 안에 가난과 겸손과 사랑으로 침묵 가운데 살아 계십니다. 이러한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인생 여정에 생명과 빛과 힘을 주시고자 오늘도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 3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