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18주일 강론)

 

성체의 참맛

 

전포동 일대를 돌아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맛집 주변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것을 종종 볼 때가 있습니다. 이 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줄을 서 있는 것을 보면 맛에 대한 의지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한 번도 맛보지 않은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한 번만 맛본 사람은 없다고 하는 맛집. 아무리 웨이팅 시간이 길어도 사람들의 얼굴에는 구김살이 없고 기대감으로 들떠 있습니다. 그리고 제과 한정 판매일 경우에는 포장 가방에 한가득 들고 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노다지를 캔 듯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국민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저 허기를 채우는 끼니가 아니라 맛을 극대화하는 음식 문화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삼시세끼를 때우는 시대는 갔고 비싸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찾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신앙생활도 맛이 있는지요? 시편에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들여라.”(시편 34, 9)고 했는데, 말씀의 식탁과 성찬의 식탁에서 주어지는 천상 음식의 맛이 어떻습니까? 맛이 있습니까? 전례의 맛을 못 느끼는 신자들은 말씀을 들어도 공허하고, 성체를 모셔도 허기질 겁니다.

 

오늘 복음은 지난주 오병이어 기적 이야기 다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긴 설교입니다. 오병이어 기적 이후 군중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 합니다. 기적의 메시지를 왜곡하여 알아들은 결과이지요. 이를 두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구약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도 불평과 불만이 끊이지 않았듯이 신약의 백성들도 빵을 배불리 먹고도 주님께 대한 믿음은커녕 기적을 자신의 세속적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이해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오병이어 기적의 참뜻을 가르쳐 주십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이어서 주님께서는 자신을 두고 생명의 빵이라고 하시면서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삶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역설하십니다. 천주교는 이 대목을 초대교회 때부터 성체성사로 이해해 왔습니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서 빵의 형상으로 오시는 주님을 생명의 양식으로 받아들이며, 그 안에 주님의 현존이 온전히 머물고 있다고 믿습니다. 성체성사는 그저 예수님의 헌신헌혈에 대한 상징이 아닙니다. 미사 중 사제의 축성으로 실체 변화되는 성체는 그 자체로 주님이십니다. 무신론자들은 성체신심을 일종의 미신으로 이해하지만, 천주교 신자들에게 성체성사는 신앙생활의 시작이자 마침입니다. 세례성사 후 첫영성체부터 종부성사 때 노자성체까지 우리는 성체를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6.25 한국 전쟁 때 공산당에 의해 수많은 성직자와 수도자가 박해를 받고 순교하셨습니다. 인민군들은 무참히 성전을 유린했고, 성상과 감실을 파괴했습니다. 어떤 인민군 장교는 감실을 따발총으로 박살 내놓고 그 안에 모셔둔 성체가 데굴데굴 바닥에 구르자 자 봐라. 너희들이 믿는 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밀가루 빵 조각 안에 신이 존재한다고? 웃기고 있네.’하고 말했답니다. 그러나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은 그 자리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리고 끝내 총살당했습니다. 굳이 성체가 빵조각이라면 피난을 포기하고 성당을 왜 지켰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체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이 말씀을 잘 묵상해 보면 성체는 주님께서 이루신 구세사를 집약해 놓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성체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이는 주님의 강생을 말합니다. 인간이 되어 오신 하느님은 스스로 낮아져야 했습니다. 참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하늘에 속해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비천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나약한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우리는 성체를 바라보면서 강생의 신비를 묵상해야 합니다. 둘째, 성체는 인간에게 먹히는 빵입니다. 빵의 존재 의미는 인간에게 살과 피가 되는 음식이 된다는 데에 있습니다. 음식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먹혀야 합니다. 그리고 먹히는 순간 본래의 형체는 사라집니다. 이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희생 제사를 통해서 구세사를 완성하십니다. 수난 전날 최후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빵을 제자들에게 떼어 주시며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빵이 우리에게 먹히듯이 다음날 하느님의 어린양으로서 당당하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십니다. 우리는 성체를 모시면서 고통의 신비를 묵상해야 합니다. 셋째, 성체는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으로써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죄로 인한 우리의 죽음을 당신의 생명과 맞바꾸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거룩한 그 죽음은 곧 부활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묻히며,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합니다. 성체 안에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에 동참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체와 일치를 이루면서 부활의 신비를 묵상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성체를 통하여 강생의 신비, 고통의 신비, 부활의 신비를 모두 묵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성체성사가 신앙생활의 정점이자 목적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어떠한 신심행위도 이를 대체하거나 능가할 수 없습니다.

 

영성체가 무미건조한 것은 전례에 대한 준비가 없고, 성체를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체는 산해진미처럼 감각에 의해서 반사적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성체는 믿음을 가지고 의지적으로 받아들였을 때 작용하는 구원의 성사입니다. 그래서 영성체 전·후 기도가 필요합니다. 보통 영성체 전 기도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바치면서 성체를 일용할 양식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도를 구성하고 있는 7가지 청원 기도를 성체 안에 계시는 주님께 온 정성을 다하여 바칩니다. 한편 영성체 후에도 기도해야 합니다. 침묵 묵상과 함께 다음의 기도를 꼭 바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서 28P를 펴 주십시오. 함께 기도합시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1 나해 연중 제23주일 강론: 에파타 주임신부1004 2024.09.09 11
60 나해 연중 제20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8.20 48
59 나해 연중 제19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8.13 32
» 나해 연중 제18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8.05 18
57 나해 연중 제17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7.28 21
56 나해 연중 제16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7.22 16
55 나해 연중 제14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7.07 23
54 나해 연중 제13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7.01 16
53 나해 연중 제12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6.24 30
52 나해 연중 제11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6.16 23
51 나해 연중 제10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6.09 25
50 나해 성체 성혈 대축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6.02 22
49 나해 삼위일체 대축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5.26 20
48 나해 성령 강림 대축일 주임신부1004 2024.05.19 20
47 나해 부활 제7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5.13 36
46 5월 성모성월 특강 주임신부1004 2024.05.08 39
45 나해 부활 제6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5.06 8
44 나해 부활 제5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4.29 13
43 나해 부활 제4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4.22 16
42 나해 부활 제3주일 강론 주임신부1004 2024.04.14 17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 6 Nex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