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17주일 강론)

 

감사와 나눔의 기적, 미사

 

가톨릭교회의 공적 예배를 미사라고 부릅니다. ‘미사라는 명칭은 라틴어 ‘Ite missa est!’에서 온 것입니다. 번역하면 가십시오.’ 혹은 파견됩니다.’라는 말 입니다. 영어로 선교를 ‘Mission’이라고 하는데, 미사와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제는 미사가 끝날 때마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하십시오.’하고 파견 선언을 합니다. 그런데 미사라는 명칭 외에도 또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미사를 주님의 만찬’, ‘빵 나눔’, ‘주님의 식탁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교부들은 미사를 에우카리스띠아’, 즉 감사제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미사의 본질은 성체성사 안에서의 감사와 나눔이라는 것입니다. 미사 중에 사제는 최후 만찬 때 주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똑같이 빵을 들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그 빵을 떼어 신자들과 나눕니다. 우리는 그 빵을 먹음으로써 주님과 한 몸을 이룹니다.

 

오늘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오병이어 기적도 그런 의미에서 미사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실 오병이어 기적 이야기 다음에 주님께서는 6장 전체에 걸쳐 당신이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라고 거듭 밝히시거든요. 오병이어 기적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표징이 실제 가리키고 있는 것은 성체성사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시절부터 거행해 온 성체성사를 설명하기 위해서 요한복음사가는 오병이어 기적을 하나의 표징으로 삼습니다.

 

1독서 열왕기 하권의 말씀에서 예언자 엘리사는 보리 빵 20개와 햇곡식 이삭을 가지고 백 명을 먹이고도 남은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고작 보리 빵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도 오천 명을 먹이십니다. 그리고 남은 빵 조각을 모으니 무려 12광주리나 되었다고 합니다. 기적의 규모에서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군중들이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라고 말한 것이지요. , 예수님이야말로 엘리사 예언자를 능가하는 메시아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기적의 규모가 누가 더 대단하냐, 그래서 누가 더 위대하냐가 아닙니다. 5천 명을 배불리 먹였다 한들 그것이 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실제 오병이어 기적을 보고 군중들은 흥분해서 예수님을 세속의 왕으로 추대하려고 하지만 그분의 메시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결국 머지않아 그들은 예수님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사실 빵의 기적을 일으키신 다음 주님께서는 스스로 영원한 생명을 주는 살아 있는 빵이라고 자신을 드러내시지만, 결국 그 생명의 빵이 십자가에서 죽어갈 때 군중들은 그분을 메시아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한편 오병이어 기적은 연말에 단골 메뉴인 사랑의 열매같은 기부 운동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후원가나 사회복지사가 아닙니다. 물론 오병이어 기적의 마중물은 한 소년의 변변치 못한 보리 빵 5개와 엔초비 같은 소금에 절인 작은 생선 2마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눔의 기적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신 것이지요. 오늘날에도 이러한 기적은 일어납니다. 맞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은 그런 의미도 있습니다. 부족하더라도 누군가 희생하면 나머지 사람들도 거기에 동참한다는 나눔의 기적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오병이어 기적은 결국 예수님만이 진정한 생명의 빵이시고, 이것은 우리가 주님을 생명의 빵으로 모시는 성체성사, 곧 미사성제를 통해서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생명의 빵이신 주님께서는 소년이 바친 보잘것없는 빵을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기적을 행했습니다. 우리가 미사 안에서 진정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 미미하고 부족한 것일지라도 나눌 줄 알게 되고 기뻐할 줄 알게 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미사 때마다 당신의 몸을 빵으로 내어놓듯이, 그래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얻듯이 성체성사에 참여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또 다른 빵이 되어 남을 먹이고 살게 할 것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을 물질적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감사를 드린다고 갑자기 내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감사를 드린다고 생활고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 안에서 감사하면 내 생각과 마음이 바뀝니다. 여러분들 한때 유명했던 오체불만족의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를 잘 아실 겁니다. 이분은 머리와 몸통만 있고 팔도 다리도 없이 태어났습니다. 평생 불구자로 살아야 하는 불행 속에서 그분이 생각을 바꾼 것이 있습니다. “바꿀 수 없는 것, 지금 나에게 없는 것에 절망하고 불평하지 말자. 오히려 나에게 남아있는 것, 나에게 있는 것에 감사하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길을 찾자.” 참된 행복은 그 무엇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현재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참된 기적은 이전과 비교해서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여전히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그 믿음으로 현세의 어려움을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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